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0)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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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2)
박두태의 아버지는 산청 함양 양민학살사건을 일으킨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병사로서 학살의 총구를 겨누었던 것이 고통스럽게 다가오곤 하여 일기장을 써서 아들 두태에게 주고 목을 매달고 죽었다.

그는 학도병으로 시작해 직업군인이 되었다. 그 현장에서의 기억을 더듬는 그는 “노인과 아녀자들이 내 총알에 쓰러졌다. 나의 정의, 양심, 삶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 일기장 이야기를 들은 민학의는 박두태를 보고 그래서 생면부지의 땅으로 들어가셨군요 하고 아버지 유언으로 한짓골에 들어간 것을 알아차렸다.

한짓골에 들어간 박두태는 못 앞에 구덩이를 파고 아버지 일기장을 묻은 후에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의 의식을 행했다. 그때 갑자기 못에서 물이 솟구치더니 물줄기 속에 노인, 아이 그리고 부녀자들의 얼굴을 한 악령들이 두태를 잡아 먹을 듯한 기세로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분명 환각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 악령들은 구덩이 속 아버지의 일기장으로 들어가 불이 붙었어요. 얼른 불을 끄고 남은 일기장을 들고 도망쳤지요”

그 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장, 도평노인을 비롯한 모두는 제 이야기를 믿지 않았어요”

박두태는 그날 이후 근 한 달을 몸져 누웠다. 얼마 후 꿈에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나 이번엔 일기장을 폭포 제일 위 바위에다 두라고 했다. 가서 그대로 했더니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위쪽에서 아름다운 곡조의 판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나는 곳으로 갔더니 고운 한복을 입은 아리따운 소녀가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노인이 북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눈에 눈동자가 없었다. 그때 소녀는 마지막 소리를 하면서 천천히 몸을 앞으로 던졌다. 놀란 박두태가 일기장(타다가 남은)을 두고 숨가쁘게 못 밑으로 내려가 소녀를 확인했지만 못에는 붉은 철축 한 송이만 물에 떠 있었다.

필자는 이 박두태의 귀촌과 판소리 소녀 등의 관련 사건으로 부산으로 돌아가버린 박두태 이야기는 소설속 사건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1951년 2월 7일에 가현,방곡, 점촌, 서주 마을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사건이 69년이 됐다. 부대원 중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두고 유족들은 안타까워했다.

유족들은 그 3대대 부대장 한동석, 연대장 오익경, 사단장 최덕신이 양심선언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 3대대가 견벽청야 작전명으로 산청 함양에서 705명이 불쌍히 목숨을 잃었고 같은 부대가 거창 신원면으로 가서 다시 719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병사들의 양심선언은 들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적 같이도 11사단 9연대의 통역장교였던 이영희 교수(한양대 작고) 한 사람이 자신의 회고록 ‘대화’에서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준 3가지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거창사건’과 ‘진주기생사건’또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필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영희 교수는 11사단 9연대가 주둔했던 진주 농림고등학교 막사에서 통역장교로 지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미군 고문소령이 남원에 있는 사단본부로 여원재를 넘다가 빨치산 습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때 통역장교가 없는 틈을 타서 이영희 중위는 잠시 휴가를 나가 있었을 때 부끄럽기 짝이 없는 거창사건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영희는 국군이 국민을 도륙하는 만행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를 심층으로 읽어본 필자는 이영희 장교가 거창사건은 알고 있고 산청 함양사건은 모른다고 한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동일부대, 작전, 시기, 권역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거창사건 따로 있고 산청함양사건 따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작 9연대의 통역장교가 갖는 사건 인식이 사건 밖에 있었던 사람처럼 하고 있는 점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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