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1)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9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1)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3)
이인규의 장편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를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소설의 한 부분을 보자. “그곳(1951년 2월 7일 산청함양양민학살사건이 실제 일어난 곳)에는 이미 기념비와 추모공원이 생긴 거고요, 한짓골 민간인학살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그 부대에서 이탈한 소수의 군인에 의해 자행된 사건입니다. 그래서 정부조사 기록이 없었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겁니다.”이 말은 소설에서의 면서기 서하가 귀촌 주인공 민학의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작가가 사건 현장을 바꾸어 놓은 가상의 현장 한짓골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그 설정의 근거가 약해 보인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그 연결이나 상황 설정에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추어야 참, 그렇구나 인정할 수가 있다.

오늘 이야기는 귀촌민들과 대척적인 자리에 서는 인물 임씨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임씨의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릴 때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와 동생을 국군에 의해 잃은 뒤 고향을 떠난 것은 봄이었다. 달랑 봇짐 하나만 챙기고 동구밖에 서 있었다. 처지를 딱하게 여긴 먼 친척 하나가 천원짜리 몇 장을 꺼내 임씨에게 쥐어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이후 외갓집이 있는 동네로 가서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 집에 처음 들어갈 때 주인은 일을 잘해 주면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까지도 보내 준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한 날 외갓집 먼 틴척 한 분이 임씨더러 부산에 가면 네 외삼촌이 있을 터이니 거기 가면 배도 곯지 않을 것이고 학교에도 보내줄 것이라 했다. 솔깃한 임씨는 주인에게 새경을 달라고 했지만 이유를 대고 주지 않았다. 결국 임씨는 고향으로 갈 수도 없어 부산으로 갔다.

임씨가 부산의 3부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는 외갓집 먼 친척이 준 쪽지를 보고 하역창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이봐 무슨 일이고? ” 임씨는 입이 얼어붙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저기요 사람을 찾는데요 우리 외삼촌이.......” “자슥아 좀 크게 씨부려라. 무신 말인지 하나도 모리것네”하고 잽싸게 쪽지를 뺏은 사내는 “최도길이 나는 이 친구이고 너는 어떻게 되노?”“외삼촌입니다”

사내는 창고 맨 끝에 서서 “그 봇짐 내리놔라. 좋은 말로 할 때” “안돼요 이건 우리 외심촌 줄건대요” 말이 끝나자 마자 주먹이 임씨의 복부를 강타했다. 쓰러져 있던 임씨가 청소부에 발견되어 가까스로 외삼촌을 만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외삼촌은 단칸방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다음날 술이 깬 외삼촌은 임씨에게 어머니 안부를 묻다가 난리 통에 군인들에 의해 죽은 것을 알고 한참이나 울었다.

그날 이후 임씨는 하역 보조일을 하게 되었다. 외삼촌은 심심하면 술에 취해 결근했다. 노임을 받았는데 그날밤 외삼촌은 그돈을 빼앗았다.

임씨는 하역장에서 무장한 군인을 보면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분노의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았다. 임씨 나이 스물이 되었다. 하역보조에서 정식 인부가 되었다. 그런데 작업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육군 군수사령부 장병들이 하역장에서 임씨가 나르던 군수품 몇 개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고 마땅히 임씨는 거부했다. 중사는 끝내 권총을 꺼내 들었다. 임씨는 어릴 때 한짓골에서 군인들의 학살 장면이 또렷이 떠올라 그 중사를 개패듯이 패버렸다. 이 일로 임씨는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 후에 외삼촌과 노조에서 구명할동을 벌여 석방되었고 날이 갈수록 주머니에는 돈이 좀 불었다.

임씨는 외삼촌이 술에 찌들어 죽자 극장에 가서 유랑극단을 보러 다녔다. 그래도 임씨가 제일 좋아하는 공연은 판소라였다. 그가 좋아하는 소리꾼은 젊고 예쁜 여자였다. 어느날 공연에서 그 여자 소리꾼이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더니 환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손을 잡아서는 일어서라고 이끌었다. 이씨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함께 춤도 추었다. 짙은 분냄새가 그의 코끝을 찔렀다. 그 뒤 그는 비몽사몽 여자를 껴안았다. 동시에 그는 건장한 사내들에게 끌려갔다. 그가 눈을 뜬 곳은 제일 처음 부두를 찾을 때 사내에게 당했던 창고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임씨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는 때가 되었다. 광복동 부영극장 앞 그 선술집에거 소리꾼 여자를 만난 것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