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과수원
[강재남의 포엠산책]과수원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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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이재무


붉고 실한 열매 꿈꾼 적이 있다
스스로의 무게 못 이겨 떨어지는,
가을의 낙과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성급한 주인은
열매의 열망 기다려주지 않는다
익기도 전에 가지를 떠나는
불그스레한 얼굴의 열매들
그들이 그렇게 떠나고 가지들은 갑자기
늙어간다 젊고 싱싱한 늦가을 햇살
과원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달구고 있다

 


완숙해지기 전에 따야한다. 완숙해지기 전에 팔아야 한다. 상품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주인의 입장이니까. 하지만 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문제가 된다. 제가 가진 그대로의 실력과 꿈 그리고 사랑까지, 다 익고 나서, 다 익히고 나서 나아가야 한다. 일러 과감果敢이라 한다. 다 익혀 과감히 떨어진(뜨린) 열매가 온전한 새 생명이다.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자의와 타의의 과감이 달라지는 건 열매의 입장에선 유감이다. 열매의 열망은 아랑곳없이 열매 떨어뜨린 과원의 가지가 가뿐하다. 하늘로 추켜 올라간 가지가 한껏 늙어가는 중이다. 아무 미련 없을 때 비로소 거룩한 것, 사람도 이와 다를 게 없다. 늦된 것만 서리 아래 여무는 풍경이 고요하다. 늦가을 햇살이 과원 지붕에서 하릴없이 노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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