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2]불일평전과 불일폭포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2]불일평전과 불일폭포
  • 경남일보
  • 승인 2020.11.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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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욕심 버리고 오른 지리산 무릉도원
◇청학동을 찾아 떠난 포행길
최치원선생이 지팡이로 글씨를 쓴 표지석.
최치원선생이 지팡이로 글씨를 쓴 표지석.

사람들은 누구나 이상향을 꿈꾼다. 그 이상향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려낸 곳일지도 모른다. 작가 토머스 모어가 쓴 공상소설 ‘유토피아’가 영국의 이상향이라면 ‘아틀란티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이상향이고, ‘에덴공원’은 기독교의 이상향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이상향은 ‘무릉도원’이고, 인도인이 꿈꾼 이상향은 ‘오로빌’이며, 우리나라에서 이상향의 대명사로 꼽히는 곳은 ‘청학동’이다. 모두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살기 좋은 곳이란 것이 공통점이다. 코로나19로 어지러워진 세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청학동’을 더욱 간절히 꿈꾸게 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엔 청학동을 자처하는 곳이 여럿 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 ‘옛 사람이 전하기를,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엎드려 몇 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농사짓기에 알맞다. 청학이 그곳에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최치원 선생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불일폭포와 불일평전을 청학동이라 믿었다. 여기서 발원한 청학동이란 이름이 지리산 산간마을인 의신, 매계, 묵계 등으로 확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사색을 즐기는 가을의 끝자락, 선학사(주지 대위스님) 경전독송반 법우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청학동으로 불리는 불일평전과 불일폭포를 찾아 산길 포행을 나섰다. 포행은 쌍계사 입구 석문에서 시작해 쌍계사-국사암-환학대-마족대-불일평전-불일암-완폭대-불일폭포와 학연을 답사하고 출발지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불교음악의 발상지 쌍계사

화개천을 따라 차나무 시배지를 지나자, 쌍계사로 들어가는 두 갈래길이 잠깐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했다.

옛길인 왼쪽 길로 들어서니 석문이 나타났다. 길 양쪽의 큰 바위에 雙磎(쌍계), 石門(석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라말 대학자이자, 힐링여행가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써서 그런지 획 하나하나는 투박하지만 글씨 전체에서는 서기(瑞氣)가 느껴진다.

쌍계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들어서자, 불쑥 월정사 9층 석탑을 닮은 석탑 하나가 나타났다. 이 석탑 뒤에 팔영루가 다소곳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불교음악(범패)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섬진강 물고기를 보고 와서 팔영루에서 팔음률로 된 범패 ‘어산’을 작곡하여 노래로 불렀으며 범패를 많은 사부대중들에게 가르친 곳이 팔영루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바람이 일자 우수수 나뭇잎들이 떨어지며 가을노래를 불러댔다. 낙엽들이 부르는 노래는 건조하면서도 사색적이다. 범패의 음률을 닮아서 그런가 보다. 깊은 산 속에서 고된 수행을 하시는 스님들께 진감선사의 범패와 자연이 들려주는 범패가 어우러져 수행처인 사찰을 ‘청학동’에 가까운 세상으로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6.25 전쟁의 총흔이 남아 있는 국보47호 진감선사탑비와 정교하게 조각한 쌍계사 석등, 지리산 삼신할매를 닮은 마애불, 육조혜능선사의 정상(머리)을 모신 육조정상탑이 조성된 금당 등 쌍계사 경내를 둘러본 뒤 불일폭포로 향했다. 300m 정도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간 뒤 진감선사의 수행처였던 국사암으로 가는 갈림길을 걸어가자 암자 입구에 1,200년이나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나를 맞아 주었다. 잎을 다 떨군 채 서 있었다. 선사는 떨어지는 느티나무 잎으로 음계를 그리며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맞춰 범패를 불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불일평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1km 정도 가자 우아한 자태를 띤 환학대(喚鶴臺)가 나타났다. 고운 선생이 청학을 불러서 타고 불일평전과 불일폭포로 다녔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다.

다시 1km정도 올라가자 옛 사람들이 청학동이라 불렀던 불일평전이 나왔다. 털보 변규화 옹이 불일오두막 봉명산장을 지키며 생활하다가 2006년 돌아가시고 지금은 그가 살았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소설가 정비석이 이름 지었다는 봉명산장은 허물어져 형체만 남아 있고, 변규화 옹이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세운 돌탑인 소망탑, 큰일이 생길 때마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한반도를 닮은 연못인 반도지, 이상향인 청학동에서 차를 우려 마시며 유유자적했을 다조와 돌의자 등에 변규화 옹의 못다 이룬 꿈이 서려 있는 듯했다. 피아골 털보 함태식 옹과 함께 지리산 산신령처럼 환경 지킴이로 사셨던 변 선생을 떠올리며 불일폭포로 향했다.


불일평전에 있는 소망탑.
◇선계(仙界)인 불일암과 불일폭포

300m 정도 좁고 험한 길을 따라 가자 아담한 불일암이 탐방객들을 반겼다.

불일암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수행하다 입적한 곳으로, 고려 희종이 지눌스님에게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그 시호를 따서 절을 불일암이라 하고 폭포를 불일폭포라고 했다고 한다. 불일암은 참 따사롭고 아늑했다. 암자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다. 이백이 쓴 시 ‘산중답속인’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표현이 바로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펼쳐진 비경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선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일암 왼쪽 계곡에서 폭포수 소리가 나직하면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오늘 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불일폭포가 범패로써 탐방객들을 반겨주었다. 오랜 가뭄 때문인지 폭포수는 몇 가닥 실줄기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몸을 비운 폭포가 사색을 하면서 온화한 자연의 목소리로 범패를 들려주는 듯했다. 폭포 아래쪽엔 고운 선생을 태워 다닌 청학이 물을 마셨다는 학연이 지금도 맑은 물을 머금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선계이자 이상향인 청학동인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청학동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세속적인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상향이 곧 청학동일지도 모른다. 필자의 마음속에 청학동 하나를 들여놓은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팔영루와 구층석탑.
불일폭포와 학연.
불일암에서 내려다 본 풍경.
환학대.
불일평전에 있는 반도지.
불일평전에 있는 다조와 돌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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