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세계 금융 경제의 중심 뉴욕 월가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세계 금융 경제의 중심 뉴욕 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0.12.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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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개척시대인 1524년에, 이탈리아의 항해사 죠바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가 뉴욕 주 맨해튼 섬을 처음 발견하였다. 하지만 맨해튼을 경제활동의 근거지로 성장시킨 주역은 네덜란드였다. 1621년에 네덜란드는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와의 교역을 목적으로 서인도 회사를 설립하였고, 1624년에는 허드슨 강 입구에 본격적인 무역 거점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네덜란드 식민지 총독은 원주민으로부터 맨해튼 섬을 24달러에 매입하여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라 명명하였다.

한편, 1654년부터는 브라질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던 유태인들이 맨해튼 남단의 월가 근처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조그만 어촌인 월가의 늪지대에 정착하여 고기잡이에서부터 행상, 모피수집 등을 하며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경제활동 영역과 기반을 넓혀나갔다. 종국에는 상업과 무역, 봉제업이 뉴욕 유태인들의 주된 업종이 되었고 무역업으로 뉴욕을 부흥시키기 시작하였다. 무역을 통하여 대규모의 자본이 축적되었고, 무역업을 지원하기 위해 보험, 은행업 등 금융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금융거래가 활발한 지역에서 정치후원금 모금도 용이하다보니 정치인들도 이곳으로 모여들게 되면서 맨해튼 지역은 국제교역과 금융, 정치의 중심지가 되기에 이르렀다.

Wall Street(월가)라는 이름의 유래는 네덜란드가 뉴 암스테르담을 점령한 이후, 식민지 지역과 주거 지역을 나누기 위해 목책으로 된 벽을 둘러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아메리카에 진출하기 위해 뉴 암스테르담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양국 간의 갈등이 고조되다가 결국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뉴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벽은 더욱 공고해지게 되는데 이 벽은 원주민과 영국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벽이 된 것이다. 1640년대부터 세워진 이 방어벽은 전재에서 승리한 영국이 1699년에 철거하였다. 이후에 평범한 땅에 불과했던 월가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 사이에 뉴욕증권거래소 등이 세워지면서 금융가가 되었다. 전 세계의 자금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어 돌고 돌아 전 세계로 다시 유통되는 것이었다.

1971년에 미국이 금태환 파기를 선언하면서 달러가 자유롭게 발행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1980년에는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가 세계 GDP 규모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공업과 제조업이 쇠퇴하고 산업자본도 축소되기에 이른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환율전쟁까지 벌이며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 시도하였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결국 미국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활용하여 금융업을 주력으로 삼기로 한다. 미국 자본은 외국의 금융시장을 개방시키며 활발하게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 가(Wall Street) 일대에는 나스닥과 거대 금융사, 투자은행 등의 대형 금융기관 기업들이 몰려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월 가 11번지에 21조 달러가 넘는 기업들의 주식이 거래되는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NYSE)가 자리 잡고 있어서 명실상부한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불린다. 뉴욕과 월가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성장하도록 만든 여러 계기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미합중국 은행의 설립이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신생국으로서 경제의 근간을 잘 다지기 위해서는 상업과 공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상공업의 발전을 위해서 국립은행의 설립을 건의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의 최초 국립은행인 미합중국 제1 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1791년 2월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월가를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뉴욕증권거래소이다. 1792년에 미국의 주식 브로커 24명이 월가에 모여 주식 매매 수수료를 0.25% 이하로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버튼 우드 협정’(Button wood agreement)을 맺게 된다. 이 협정을 기반으로 1817년 뉴욕 증권 거래위원회라는 기관이 출범하게 되었고, 1863년에 ‘뉴욕 증권거래소’가 정식 승인을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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