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 다시 큰 걸음 (7)축제가 나아갈 길
개천예술제 다시 큰 걸음 (7)축제가 나아갈 길
  • 김지원
  • 승인 2020.12.23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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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
익어도 잘 익은 석류 스르르 빗장 풀 듯
우리의 하늘 문이 비로소 열리던 날
하늘님 아들 오시어 우리 아침 지으셨다.
그 빛 널리 이롭게 사방팔방 퍼져 나가
사람들 꿈꾸면서 사람답게 일하면서
더 없는 오롯한 누리 가꾸도록 하셨던 것.

보아라! 하늘 중에 으뜸 하늘 상달 하늘
가장 눈부시게 예 이리 내리느니.
진주땅 구석구석에 손질되어 내리느니.(중략)

지리산 가자신다, 백두산 오신단다.
부둥켜 얼싸안고 다시 신화 열자신다.
우리가 우리이므로, 언제까지나 우리이므로.(후략)

서벌 시인이 42회 개천예술제 제전에 올린 축시다. 개천예술제는 하늘 문 열리는 ‘개천’의 신화를 다시 열자며 국토의 흙과 물을 모아 정성을 노래했다. 개천예술제는 이처럼 지역축제라는 의미보다는 민족축제라는 의미로 탄생했고 번성했으며 명맥을 이어왔다. ‘전국’이 붙은 경연대회를 무수히 개최해 전국의 학생, 일반, 기성 예술인들이 먼 길을 찾아들어 기량을 겨루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전국’과 ‘종합’예술제 라는 목표가 오히려 짐이 되었을까. 지금의 개천예술제는 창제 당시의 위상에 비하자면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이 축제를 찾거나 전국의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찾아와 작품을 남기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71년의 축제개최 기간이 지나오면서 10월이면 개천예술제를 여는 것은 당연지사가 되었지만 농번기를 마치고 화려한 구경거리를 찾아서, 혹은 1년을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러 축제에 나섰던 그 많았던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 오래된 축제가 됐다.

 볼 거리 없던 시절 서커스 천막만 보아도 흥이 나고, 풍물패 가락만 들어도 신이 났던 개천예술제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축제였다. 디지털 문화에 점령되기 전부터 영화관과 공연장 등에서 사시사철 열리는 문화콘텐츠는 굳이 10월 축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보고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시절이 되었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늘어나자 사람들의 취향도 제각각 개인화되고 천편일률 마련한 프로그램으로는 축제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힘든 시절이 되었다.

 사람이 빠진 축제는 힘이 약하다. 1980년대 접한 개천예술제는 백일장이며 사생대회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학생참가자와 야시장을 오가던 인파는 남강 줄기 못지 않았다. 강을 따라 늘어선 천막 아래엔 불량 음식과 불량 놀거리들의 유혹이 넘쳐났다. 입시를 앞둔 11월 칼바람 속에 열렸던 예술제에서 땅콩이며 깨를 붙인 온갖 엿가락 사먹은 기억이 난다면 제법 나이를 먹은 진주사람일테다.

 개천예술제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진주남강유등축제(이하 유등축제)를 찾는 구름 인파는 여전했다. 유료로 개최되던 시기에도 온갖 유등 속을 거니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유등축제뿐만 아니다. 드라마페스티벌도 같은 시기에 열려 연예인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날이면 팬들의 환호성이 영화제 못지 않다. 하필 화려한 이들 축제가 10월 보름 안에 경쟁하듯 벌어지니 순수예술의 대중화라는 수수한 개천예술제가 주목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향수자들이 변했다. 이제 개천예술제가 변할 차례다. 신라문화제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처럼 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를 잇달아 개최해 축제기간을 늘리고 차별화된 예술제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를 비롯해 2016년과 2013년에도 태풍으로 인해 유등축제가 휴장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가을태풍을 피해 축제기간을 변경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개최시기 변경 논의가 진행된다면 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 드라마페스티벌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행 축제일정에 대해서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등축제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은 등 글로벌 육성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별개의 축제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개천예술제에서 파생된 축제임은 분명한 역사가 있다. 성공적인 유등축제와 침체된 개천예술제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도 개천예술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진주는 민속예술뿐만 아니라 소목장, 장도장, 두석장의 공예술로도 이름 높다.
 축제와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는 지난해 또하나 좋은 소식이 있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지정된 것이다. 진주시는 2013년부터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UCCN) 가입을 준비했다. 하미애 진주시 유네스코 팀장은 창의도시 선정에 대해 “진주는 공예와 민속예술의 풍부한 문화자산과 다양한 축제 콘텐츠, 스토리텔링 등 문화도시로 강점이 분명한 도시”라며 “창의도시 선정 과정에서 시민과 문화단체들이 의견을 수렴하고 추진계획을 작성해 이를 토대로 국제학술토론회, 세계민속예술 비엔날레, 국내외 벤치마킹 등 다양한 사업을 시행 한 것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진주시는 2016년 민간 학술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준비과정을 거쳐 같은 해 9월 민간문화재단, 지역방송, 민간문화연구소 대표들과 MOU를 맺고 11월에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2019년 2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지정된 이천시를 방문해 벤치마킹에 나서기도 했다.

 진주시는 지난해 2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공예·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 국내 추천도시로 선정돼 10월 30일 유네스코 본부에서 창의도시로 최종 선정됐다.

 전세계 84개국 246개 도시가 가입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은 천년고도 진주시가 안고 있는 원도심 공동화 문제와 창의관광·창의산업 정체성 등을 해소하고 지역의 문화자산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경제·사회·문화적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대를 높였다.

 창의도시 지정 후 첫 한 해를 보냈지만 코로나19 여파는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가 취소되는 등 문화예술계에 가장 큰 타격을 남겼다. 하미애 팀장은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공예비엔날레, 진주 아티스트레지던스, 국제학술토론회, UCCN연례회의 참가 등이 취소 되었다”며 “대신 온라인으로 오스트리아 창의도시 동료학습 가상방문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국제저널 간행, 전통공예 창업아이디어 공모전, 문화예술택배사업, 민속예술 미디어아트복합 민속예술공연 제작지원사업, 1인1예능 프로젝트, 도시와 문화랩 등 활동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진주시가 민속예술·공예부문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지정된 데는 풍부한 문화자산이 한 몫했다. 진주는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와 세계문화유산 진주농악뿐만 아니라 교방굿거리, 진주포구락무, 진주한량무, 진주오광대까지 춤의 고장이며, 전통가구 소목으로 이름난 고장이요, 여인네들의 장신구 은장도로도 이름 높은 장도장의 고장이기도 하다. 소가구의 명성만큼이나 가구의 금속장식 두석장도 소문이 났다. 차문화의 발상지임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축제가 열린 개천예술제의 고장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는 유등축제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유서깊은 민속예술과 공예술이 다시 주목받는 진주시, 여기에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축제 개천예술제의 부흥이 더해진다면 전통예술이 접목된 축제도시로 가치와 지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서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안영숙 연구자.

 지역축제 연구를 기반으로 ‘축제학’ 정립을 위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안영숙 박사는 지난 8월 발표한 ‘개천예술제를 대상으로 한 지역축제 재맥락화 연구’를 경남의 문화사를 인문사, 예술사, 생활사로 분류해 문화지도를 만들기 위한 아카이브의 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안 박사는 “외국과 다른 정서 다른 환경에서 발달한 우리 고유의 축제를 서양의 카니발이나 디오니소스 축제에 근거해 축제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전국 어디나 똑같은 축제가 양산되기도 하고 축제다움이나 정체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현대축제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우리만의 축제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안 박사는 “현재의 축제사 연구에서 개천예술제의 위상과 가치조명은 제외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개천예술제를 통해 우리만의 축제 이론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안 박사는 개천예술제 경연과 공연이 한국문화사에 남긴 가치와 지역 언론이나 비문화예술인의 역할과 관심이 축제의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후속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개천예술제를 독자적으로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안 박사의 말은 지역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축제임에도 지역민의 관심에서 조차 멀어져 있는 현실에서 개천예술제 주체자들 스스로도 되짚어보아야 할 부분이다.

 개천예술제 71년 역사상 세번째의 궐제를 뒤로하고 2020년이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세계적인 팬데믹을 몰아내고 지역민의 삶도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 어려울수록 그 속에서 피는 문화예술은 더욱 힘이 실린다. 개천예술제는 전쟁 속에서도 축제를 이어왔다. 세계적인 공연행사였던 라이브 에이드도 에티오피아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렸다. 축제의 바탕에 깔린 제의의 정신은 기원과 소망의 기대심리를 축제마당으로 끌어낸다.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은 하루아침에 눈녹듯 사라질 일은 아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문화예술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도 개천예술제의 과제다.

주강홍 한국예총 진주지회장.
 
주강홍 한국예총 진주지회장은 “올해는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개천예술제를 개최조차 못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내년부터는 세계화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유네스코 창의도시와 접목하여 예술제 확대방안을 고민중”이라며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태국 치앙마이와 교류를 진행하고 있고 독일 베를린과도 MOU를 맺고 개천예술제 해외 교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진주시와 한국예총 진주지회는 지난해 6월 독일 베를린 문화카니발 퍼레이드에 ‘진주성 취타대’를 참가시켰다. 한·독 문화예술 교류활동으로 재독한국문화협회 공식 초청이었다. 올해 개천예술제에는 독일에서 방문공연을 올 예정이었다. 주강홍 지회장은 “새해에는 기존 예술제 답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제를 위해 연구중”이라며 세계화를 강조했다. BTS가 이룬 것처럼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의 문화소비자들을 감동시키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인권운동의 선두주자인 형평사운동과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시발점, 섬세한 공예술과 민속문화의 전통이 뿌리 깊은 도시, 그속에서 ‘예술을 통해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가꾸어 가자’는 개천예술제가 내년에는 이 감염병을 뚫고 70주년을 맞이한다.

 평등 인권은 세계인 누구나 누릴 기본복지다. 삶의 다음 복지는 문화예술의 향수(享受)여야 한다. 축제가 그 숙제를 안고 있다.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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