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8)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38)
  • 경남일보
  • 승인 2021.01.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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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0)
최근 독특한 수필집 시리즈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마산교구 가톨릭 문인 3인 3색 신앙수필집>이 그것이다. 이번에 3집인데 2018년부터 연간으로 2020년까지 나왔다. 수필가 황광지가 주도하는 시리즈로 1집은 <한 번만 멈추면 아름다워진다>(홍예성, 조정자, 황광지), 2집은 <마음은 닻을 내리고>(김정권, 이준호, 황광지), 3집은 <파란, 찬란>(조정자, 유희선, 황광지)이었다.

이번에 낸 <파란, 찬란>은 조정자 편에 12편, 유희선 편에 13편, 황광지 편에 13편 도합 38편을 수록하고 있다. 한 사람당 10여편씩 낸 것이므로 이 정도면 거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량이다. 3집의 표제가 주목된다. <波瀾, 燦爛>인데 이를 살펴보자면 황광지 편에 나오는 <파란 만장한 다산>을 먼저 읽어야 한다. 황광지 작가는 단산(茶山) 정약용(1762-1836)에 관한 관심으로 이 수필을 썼다. 서두를 먼저 읽어 본다.

“시간이 가도 강진 다산박물관에서 본 글이 내 뇌리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산 선생이 그토록 서학에 매료되었었는데, 돌아섰을까, 그 형제들과는 길을 달리한 것에 대한 생각이 예전부터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지내는 중에 도서관 신간서 이 책이 신기하게 눈에 들어왔다. ‘파란(波瀾)’, 책 표지이 짙푸른 파도 디자인과 글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부제는 ‘다산의 두 하늘, 천주와 정조’였다. 평소에 내가 꽤 신뢰하는 인문학자 정 민이 엮은 책이라 망설이지 않았다. 뭔가 밝혀 줄 것 같았다. 들뜬 마음에 나는 책의 중간 면을 슬쩍 넘기다가 처음 접하는 한 줄을 먼저 보았다. ”

그는 이승훈에게 자청하여 세례를 받아 약망(若望) 즉 요한이라는 본명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 무수히 듣고 입에 올렸지만 ‘요한’은 처음이었다. 그의 친가나 외가로 4촌 이내 안에서 성인 성녀가 셋, 복자가 셋이나 나왔고 순교자 수는 훨씬 많다는 것을 천주교 신자라면 알 만큼 아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렇게 책 속에 깊이 침몰해 들어갔다. 독자도 같이 따라들어가 보자.

“책에 코를 박았다는 것이 맞겠다. 요한은 과거공부도 팽개친 채 모여 천주교를 공부하다 물의를 일으켰고 명례방의 종교집회에 참석해 적발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반대와 철통 감시에도 마음을 돌랄 수 없었다. 다산을 연구한 정민 교수는 정조의 기대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배교를 택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신앙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 나는 마음이 좀 놓였다. 디블뤼 주교의 비망기에는 다산이 만년에 참회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조선복음전래사’를 저술했고, 세상을 뜨기 전에 종부성사까지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여태껏 내가 들어보지 못한 내용에 잠시 읽기를 중단하고 숨을 골랐다.”

여기까지 황광지 작가가 처음 안 것은 다산의 세례명이 ‘요한’이라는 것, 이승훈에게 자청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 세상을 뜨기 전에 참회하고 종부성사를 받았다는 것 등이다. 작품을 건너 뛰고 이어 읽어보자.

“고전학자 정민은 다산이 10인 신부에 속했다고 확신했다. 천주교 신자들은 다 아는 바이지만 조선의 천주교회는 가톨릭 역사에 유례없는 가성직자 제도가 있었다.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에 자신들끼리 교리착을 공부해서 세례를 주고 신부를 임명해 미사까지 봉헌한 것이다. 1786년 가을 신부를 결정하던 모임에 정약용 형제가 참여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임면한 신부가 10명이었는데 권일신, 이승훈, 이존창, 유항검, 최창현, 5인만 확인됐다. 별도의 기록에 홍낙민, 최야고보가 나타났고 3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민 교수는 적어도 두 사람은 다산과 정약전이라고 알려 줬다. ‘조선복음전래사’에서 자기 형제의 실명을 빼고 ‘그 밖의 여러 사람’속에 숨어버렸다고 했다. 다산은 신부였다고 정민이 밝혔고, 나는 수긍이 되었고 크게 기뻤다.”

이쯤에서 작품과 관계없이 다산에 관한 정보를 몇 가지 제시하여 독자들의 관심도를 높여 드릴까 한다.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은 진주목사를 지냈고 장인 홍화보(洪和輔)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진주)를 지냈으므로 다산은 청소년시절 진주에 아버지 부임지에서 약간은 살았을 것이다. 또 장인이 진주에서 병마절도사를 지낼 때 아내와 같이 진주에 방문한 기록이 있다. 장인 따라 촉석루에 올라 설명을 들었고 이때 촉석루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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