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뉴질랜드 키위부대
[도용복의 세계여행]뉴질랜드 키위부대
  • 경남일보
  • 승인 2021.02.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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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평화 위해 기꺼이 바친 희생
 
 
1950년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 싸워준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그곳 오클랜드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지원해 만든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있다.

하지만 장소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께 여쭤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한국인들에게 물어도 잘 알지 못했다.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눈앞에 한인식당이 보였다. 늦은 시간인데다 순간적으로 허기를 느껴 급히 식당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고기집, 현지 말로는 ‘Korean BBQ’ 였다. 된장과 밥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어디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등에 칸막이를 맞대고 돌아 앉아있는 여성이 한국 사람이었다.

외국에서 오히려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나 같은 노인을 귀찮게 여기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짧게 용건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한국전쟁 기념비를 찾고 있는데 말씀 좀 여쭤도 될까요?”

“네, 편하게 물어 보세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대화에 응해주었다.

“저는 한국에서 유엔평화기념관에 명예홍보대사로 봉사하고 있어요. 뉴질랜드 군인들이 저희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이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이곳 오클랜드 어딘가에 모셔져 있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그 소재지를 알고 계신가요?”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소재지를 알아봐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기념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소재지는 파넬 로즈가든, 즉 파넬에 있는 장미공원이라는 곳인데 ‘도브 마이어 로빈슨 파크’ 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오클랜드에서 톡톡 튀는 개성으로 큰 인기를 차지했던 도브 마이어 로빈슨이라는 시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했다. 그곳에 바로 기념비가 있는데 그 옆에 고목이 있어 찾기 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가 안내한대로 버스를 타고 도브마이어 로빈슨파크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도브마이어 로빈슨 파크, 마치 다리 밑을 지나가는 것 같이 입구를 아치형 가교처럼 만들어 놓았다. 다른 곳에서는 볼수 없는 풍경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멀리 나무가 보였다.

줄기식물이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거대한 마녀의 숲에 들어온 듯 했다. 나무를 향해 가는 길에 색색의 장미화원이 펼쳐졌다. 큰나무에 다다르자 화강암 비석이 보였다. 주변에는 잔디가 비교적 잘 정돈돼 있었고 비석 앞에는 꽃이 놓여 있었다. 그 비석에는 한글로 큼지막하게 ‘영원히 기억 하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비석 앞 동판에 새겨진 내용. 지금은 고인이 된 부산의 정치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낯선 땅에서 처음 보는 글귀,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이 뭉클해졌다.

글귀 바로 밑 동판에는 태극기와 함께 ‘유엔 헌장의 숭고한 정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싸운 모든 뉴질랜드 용사들의 공로를 여기에 기린다’ 라는 글귀도 함께였다.

뉴질랜드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8일만에 해군 프리깃함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들은 유엔군과 함께 우리나라 영해를 순찰했고 곧이어 케이포스 지상군이 합류했다. 지상군은 경기 가평전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전과를 세웠지만 적지않은 희생이 따랐다. 당시 참전군인은 5144명, 전사자는 40여명, 부상자는 110명 정도로 파악된다. 부끄럽게도 많은 이들에게 잊힌 곳, 문득 이 곳이 앞으로는 다시 되새겨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석 앞에는 “뉴질랜드 한국 참전용사회, 한국뉴질랜드 협회, 주한 뉴질랜드대사관 등 기관, 강창락 왕상은 등 독지가의 협조를 받아 건립했다”고 동판에 기록돼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생전에 존경했던 왕상은 회장님이 이 비석 건립에도 함께했다는 내용이 있어 인상깊었다. 왕상은(王相殷, 1920년 3월 31일 ~ 2019년 10월 16일)회장은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본관은 개성이며, 부산 출신이다.

이 시국에도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것은 오른손이 하는 선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비석의 틈새 하나하나 쓸고 닦으며 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고 화관을 가져와 비석 앞에 놓아두었다.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 조깅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지나가던 뉴질랜드 사람들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시선에는, 비석은 있지만 외국어로 쓰여 있어 신경 쓰지 않았던 공간인데 동양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정성스럽게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는 광경이 신기했으리라. 그들 시선에 이 비석의 글귀가 한글이고, 내용은 6.25 때 한국을 돕기 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전사하고 부상한 뉴질랜드 키위부대 부대원의 영령을 모신 곳임을 알았으리라.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전사한 그들과 참전해준 고마운 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묵념을 했다.

세상에는 얼마나 이렇게 많은 분들의 손길이 남들 모르게 닿아 있을까? 뉴질랜드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원수는 잊되 감사는 영원히 기억해야하는 법이다.

이 글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다녀온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클랜드 도브마이어 로빈슨파크 한국참전 기념비앞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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