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5]자굴산 둘레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5]자굴산 둘레길
  • 경남일보
  • 승인 2021.02.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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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능선에 세워놓은 풍력발전기
◇남명 선생의 꿈을 키워준 자굴산

필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종교는 어머니의 신앙이다. 어머니께서는 먼 길을 떠나시거나 산길을 가실 때면 큰 나무나 바위, 샘에다 비손을 하시고 길을 나선다. 산행을 할 때나 여행을 떠날 때, 필자도 마음속으로 비손을 한다. 그 대상은 주로 자연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식의 꿈이 성취되길 기원하고, 스스로의 안녕을 비손하시던 어머니의 신앙이 이 세상 가장 거룩한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쩌면 산 또한 거룩한 종교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존재들에게 꿈과 행복을 건네고, 건강한 삶을 베풀어 주기 때문이다. 자굴산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남명 조식이란 위대한 인물의 꿈을 품어 키워준 모체가 자굴산이다.

진주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가자, 자굴산둘레길 들머리인 쇠목재에 도착했다. 쇠목재 가례 방향에 아담한 돌탑 하나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탑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행복한 산행을 기원한 뒤, 한우산 등산로 쪽으로 100m 정도 올라가자 휘어져 있어 더욱 아름다운 색소폰로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길을 색소폰 삼아 나훈아의 ‘테스형’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자굴산 방향으로 되내려와 자굴산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쇠목재-둠배기먼당-갑을전망대-중봉사거리-달분정사거리-내조전망대-금지샘·명경대-절터샘-써레봉사거리-둠배기먼당-쇠목재’로 순환하는 7.4㎞를 탐방코스로 잡았다. 897m나 되는 자굴산의 8부 능선에다 둘레길을 조성해 놓은 ‘자굴산둘레길’은 우리나라 둘레길 중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는 들뜬 기분과 함께 새로 조성하고 있는 ‘남명숨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탐방을 시작했다.

 
쇠목재 색소폰로드
◇자굴산둘레길에 조성된 ‘남명숨길’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자, 쇠목정이 나타났다. 잠깐 숨을 안정시키고 다시 10여 분 올라가니 둠배기먼당에 닿았다.

여기서부터 자굴산 능선을 따라 한 바퀴 순환하는 둘레길을 조성해 놓았다. 갑을전망대가 있는 곳을 향해 걸으면서 왼쪽 건너편을 바라보니 한우산에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얀 날개를 반짝이며 선 22개의 발전기가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갑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갑을마을과 양성, 개승마을은 요새처럼 둘러싸인 산들의 호위를 받으며 쉬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아늑하게 보였다.

전망대 옆에 ‘남명숨길’ 안내판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자연을 벗삼아 걸으면서 남명 선생의 발자취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해 ‘남명숨길’을 조성해 놓았다. 자굴산에는 상수리나 갈참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많다 보니 겨울을 인내하는 나무들이 모두 명상에 든 수행자처럼 보였다. 나무가 전하는 묵언들을 둘레길에다 낙엽으로 수북하게 쌓아놓고 있었다. 겨울철 자굴산둘레길을 찾는 탐방객들은 스스로가 수행자가 되어 걷는다. 잎을 떨군 나무들을 보면서 잡념을 내려놓고, 저 멀리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과 들녘, 산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함께 떠올릴 수 있어 참 좋다. 밟히는데 익숙해진 졸참나무 잎들은 이미 길이 되어 필자를 맞아 주었다. 묵묵히 걷다보니 달분정사거리를 지나 어느새 내조전망대에 닿았다.

내조마을과 칠곡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월아산·방어산·와룡산이 다소곳한 자세로 자굴산을 우러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을 탁 틔게 하는 호연지기를 키울 만한 명당자리다. 돌들이 강을 이룬 너덜지역 두어 곳을 지나자, 금지샘과 절터샘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남명 선생이 학문을 닦고 심신을 수련했다는 명경대를 찾기 위해 금지샘 쪽을 향했다. 병자호란때 청나라군이 침입하여 산세를 보고 요새를 만들기 위해 자굴산으로 올랐는데,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금지샘의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모두 말라 버렸다는 얘기가 지금도 고여있을 것 같은 금지샘. 웬일일까, 호국의 의지가 고여있는 금지샘이 바짝 말라 있어 안타까웠다.

 
내조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조마을

◇명경대와 남명목에 서린 남명의 뜻

명경대는 자굴산 동북쪽 절터 위와 남쪽 금지샘 근처에 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위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시 두 편이 남아있어 명경대 위치를 고증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높다란 명경대 공중에 솟게 한 이 누구인가/하늘 받치는 기둥 부러져 이 골짜기에 박혔네.’ 금지샘 약간 아래쪽에 깎아지른 듯한 큰 바위가 외따로 서 있었는데, 시의 첫 부분에 나오는 내용과 흡사했다. 바위에 올라보니 15~20 명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펼쳐진 풍경 또한 절경이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남명 선생이 몸과 마음을 닦고 꿈을 키웠던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위쪽은 기암괴석으로 천상세계를 이루었으니, 천국의 첫 관문인 명경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이 갔다. 의령군 가례면 이택순 면장께 전화를 드렸더니 의령군 관계자와 남명학 관련 연구원들이 답사한 뒤 최종적으로 명경대라고 결론을 내린 곳, 또한 이 곳이라고 했다. 명경대 위치에 대한 궁금증이 풀려 갑갑했던 마음이 확 틔는 것 같았다.

절터샘에 닿아 정상 쪽을 바라보니, 부부바위가 서로 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절터샘을 지나 써레봉사거리로 가는 중간에 수령 500년 된 팽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남명 선생이 나라의 풍요와 안녕을 염원하면서 심었다고 해서 ‘남명목’이라 불린다. 둠배기먼당까지는 걷기가 참 편했다. 중간에 자연석 돌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산의 외로움과 골짜기의 그리움이 쌓여 바위탑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있는 낮은 산이 멀리 선 높은 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제 모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연을 배우게 하는 자굴산둘레길.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과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를 익히는 것이 종교란 걸 깨달은 남명 선생의 큰 뜻을 마음에 새긴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남명 선생이 수양했다는 명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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