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4]글립토테크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4]글립토테크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02.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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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작품 '꽃을 가진 여인'
폴 고갱 작품 '꽃을 가진 여인'

 

커피 한 잔 마시기를 이렇게까지 망설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2000~3000원이면 꽤 괜찮은 커피를 아무 곳에서나 즐길 수 있는 아랫동네와 가격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 고작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커피 한잔 값이 7000원 이라니! 문득 동전 몇 개로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한국의 자판기 커피가 그리워졌다. 유럽 어디를 가든지 간에 대중교통 요금이나 커피 한잔 값을 보면 대충 그 나라의 물가가 짐작 되는데, 여긴 뭐하나 고르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살인적’이라는 북유럽 물가는 덴마크를 두고 하는 말이었던 듯싶다. 그런데 비싼 물가를 감내 하고서라도 다시가고 싶은 도시 중에는 늘 코펜하겐이 내 마음깊이 서려있다. 이 도시는 세련되었으면서도 자연적인 북유럽의 멋과 감성적이면서 아기자기한 서유럽의 멋을 동시에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도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곳에서의 예술은 어떤 존재며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은 늘 설레고 벅찬 일 중 하나다. 게다가 예술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기반이 된 도시를 구석구석 여행하는 일은 그 나라의 예술가 혹은 그들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던 후원가나 수집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들 역시 이 땅에서 나고 자랄 때, 오늘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커피 값 때문에 놀랐던 마음은 잠시 접어 두고 코펜하겐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미술관을 찾기로 했다. 그 첫 시작은 덴마크의 이름난 사업가이자 수집가가 건립한 미술관이다.

◇예술을 사랑했던 맥주회사 사장님
 먼저 이 미술관에 가기 전에 눈여겨봐야 할 맥주 브랜드가 있다. 바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맥주 칼스버그(Carlsberg)다. 1847년 창립된 칼스버그는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으며 주류 업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창립자 J.C 야콥슨(J.C.Jacobsen,1811-1887)은 그의 아들 이름 칼(Carl Jacobsen,1842-1914)을 브랜드명으로 내걸었다. 칼은 한때 자신의 독자적인 맥주 브랜드를 만들어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를 바랬으나, 두 회사는 이내 합쳐지면서 오늘날의 칼스버그를 있게 만들었다. 
2대 사장 칼은 비즈니스 능력도 탁월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미술작품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그는 예술작품이 사람들의 삶을 더욱 빛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으며 그의 예술적 가치관은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해 미술관 건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완성된 글립토테크 미술관은 개인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이면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보유 하고 있다. 맥주를 팔아 번 돈이 예술작품으로 변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심미안을 넓혀 주고 있는 것이다. 
 글립토테크(Glyptotek)미술관은 그리스어로 조각을 뜻하는 단어 Glyptos와 전시관 따위를 일컫는 Theke가 합쳐진 명칭이다. 미술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칼은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 작품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은 미술관 컬렉션의 기반이 되었다.
칼은 미술관의 존재가 결코 관람하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을 갖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학문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관람객이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작품은 그들과 교감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결국 관람객이 느끼게 되는 감동과 여운으로 남길 바랬다.
칼의 이러한 생각과 가치관은 미술관의 곳곳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미술관의 각 전시실은 한적한 오후에 산책삼아 와서 슬쩍 둘러봐도 좋을 만큼 아늑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미술관 내부에 조성된 정원은 식물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관람 중간에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게 함은 물론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실 안까지 맑은 공기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글립토테크는 미술관은 총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조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미술관은 1887년에 더욱 확장되면서 작품 수 또한 크게 늘었는데, 이는 미술관의 창립자 칼 야콥슨의 끊임없는 미술품 구입 덕분이었다. 그는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고 감명 받거나 흥미로운 작품들을 구입했고, 화가들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 결과 글립토테크 미술관의 19세기 프랑스 전시실은 고흐, 고갱, 드가, 르누아르, 모네, 세잔 등 여느 미술관 부럽지 않은 화가들로 꽉 차 있다.

글립토테크 미술관 내부 정원
글립토테크 미술관 내부 정원

 

◇그리고 고갱 
멀쩡한 직장을 잘 다니다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한 남자가 있다. 요즘 세상이라면 자신의 꿈을 쫒아 용감하게 생업을 포기한 이 남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도 있을 테지만 100년 전 세상의 시선은 지금과 달라도 한참 달랐을 것 이다.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은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가족들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고갱을 데리고 페루로 거처를 옮겨야했다. 유년시절을 남아메리카에서 보낸 고갱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강하게 작용한 나머지 평생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도 해군에 지원하여 수년간 선상생활을 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1884년 고갱은 코펜하겐에도 온 적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느라 가장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에 생계가 어려워지자 아내의 고향에서 처가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처남과 함께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계속된 갈등과 고갱의 형편없는 덴마크어 실력은 실패라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었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브르타뉴 지역의 퐁타방(Pont-Aven)으로 건너가 에밀 베르나르 같은 화가들과 조우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지만, 그는 또 다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며 떠난다. 그곳이 바로 고갱다운 예술적 면모를 완성시켜 준 남태평양 타히티다.
고갱은 타히티의 자연과 순수하지만 어쩌면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크게 매료 되었다. 이 때문에 타히티 시절 고갱의 캔버스는 원시적인 모습 그 자체의 자연과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고갱이 완전히 이들의 삶에 동화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저 서양인의 시선에서 본 이국적이고 새로운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내 높은 값에 판매하는 것이 고갱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고갱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을 계속 파리로 보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타히티에 체류하는 동안 파리 화단에서 거의 잊혀 지다시피 한 고갱은 한 때 파리로 갔지만, 곧 다시 타히티로 돌아와 여생을 쓸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글립토테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개인 화가들의 개별 작품 수로는 고갱의 작품이 40여점으로 가장 많다. 그 중에서 ‘꽃을 가진 여인’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해 처음으로 그린 그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짙은 윤곽선과 색 면을 넓게 칠해 버리는 표현방식과 강한 색채만이 눈에 띄는 그의 그림은 평면적이고 밋밋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고갱의 그림에는 화가 자신의 이상과 내면이 묻어있다. 그래서 고갱의 그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잘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와는 다른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칼 야콥슨과 그의 부인.
칼 야콥슨과 그의 부인.

 

주소: Dantes Plads 7, 1556, Copenhagen115
입장료: 성인 115DKK (한화 약 2만 7000원), 18세이하 무료
운영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홈페이지: https://glyptoteket.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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