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둥근 감방에 서로의 부리를 가두고
제발 날개가 돋지 않기를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김규성(담양) 시인의 ‘우주’
전쟁 통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아이가 태어난다는 말은 ‘사랑’이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겠다. 이와 달리, ‘우주’ 디카시를 읽어야 한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 ‘무엇’이면 그 하나만으로 ‘우주’가 될 수 있을까. 서로 ‘우주’에 상응할 만한 것을 갖는 것 혹은 되는 것이라니. 그러니까, 역설적 의미로 날개가 돋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 기도의 주체가 있으므로 죽음은 아니다. 익히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인데, 타의든 자의든 서로에게 갇힌 저 상황이 곡진하고 아름답다. 긍정성만이 시의 힘은 아니다. 영상과 문장의 조화, 메타포의 전복과 명징함, 시적 의미의 확장을 보여주는 멋진 디카시를 읽는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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