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이번 4·7재보선 결과는 최근 수년간 끊임없이 정치적인 승리를 구가해오던 여권의 참패로 끝이 났다. 1년 전에 180석을 거머쥔 총선과 비교하면 매우 극적인 몰락이다. 뉴욕타임스는 그 원인을 두고 기득권자의 ‘내로남불(Naeromambul)’ 에 있다고 보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위선적 태도 말이다. 그러면,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부산 시장과 서울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세칭 ‘추윤 갈등’이 지루하게 이어져 갔다. 그리고 부동산 문제가 불거졌다.
나는 내로남불의 정치적인 뿌리가 19세기 후반기의 ‘위정척사’에 있다고 본다. 글자 그대로, 나는 정의롭고, 너는 사악하다는 것. 유교적인 세계관, 아시아적 가치에서 벗어난 모든 생각의 틀은 사악하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어 백성을 계몽하려는 사람들도, 대외적인 외교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사람들도 사악한 인간형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문화혁명 때 실용적인 노선을 걸으려는 정치인과 지식인을 싸잡아서 주자파(走資派)라고 규정한 것도 중국판 위정척사다. 어쨌든 위정척사와 내로남불은 타자의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 자폐적인 배외주의가 엄존하게 마련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국회 법사위에서 우리 편은 인권과 정의의 편이라고 당당히 말한 (윤아무개가 우리 편이 아니라면 반인권과 불의의 편이라고 뒤집어놓고 밝힌) 법무부 장관의 어록을 보면, 총선 때 이번 총선은 반일 세력과 친일 세력의 대결이라고 말한 후 뜻을 이루고 국회부의장에 오른 인물을 비추어보면 내로남불의 정치 지형학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백년 남짓한 망국사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서학 유린과 세도정치는 3정의 문란과 함께 임술년 민란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에 그런대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인 대원군은 시한부 정권이란 한계에 놓여 있었다. 중도적 외교 관계에 부심했지만, 그는 이 한계를 극복하려고 고루한 유림의 척사관에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신년에 등장한 김옥균 등의 젊은 지사는 경박한 재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권은 미일(美日) 기존 체제와 등을 돌리고, 북중(北中) 신체제를 지향한다. 특히 지금 북한은 심각한 척사관에 빠져 있다. 본래부터 주체사상이란 게, 동학군, 한말 의병, 중국동북유격대로 이어져온 척사 이데올로기의 전통 내지 정통성 위에서, 자본주의의 물질적 다양성과 결이 다른 차원의 유물론에 바탕을 둔 극단적인 배외주의가 아닌가. 오랫동안 개혁개방으로 재미를 본 중국 역시 중국몽이란 자폐의 악몽을 넘보려고 한다.
내로남불의 문제점이 공직자의 부동산 문제, 지도층의 사생활, 운동권 논리, 이상한 적폐몰이, 증오범죄의 토착왜구론 등에만 국한되어선 안 된다. 협소한 울타리에 갇힌 역사관과 현안의 외교 문제에까지 폭을 넓혀야 한다. 사족 하나 덧붙인다. 위정척사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게 동도서기였다. 명분과 실리, 아시아적 가치관과 서양의 자본주의를 접목하고 융합하는 것. 이 역사적인 전망은, 무능한 고종도 인정했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나는 내로남불의 정치적인 뿌리가 19세기 후반기의 ‘위정척사’에 있다고 본다. 글자 그대로, 나는 정의롭고, 너는 사악하다는 것. 유교적인 세계관, 아시아적 가치에서 벗어난 모든 생각의 틀은 사악하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어 백성을 계몽하려는 사람들도, 대외적인 외교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사람들도 사악한 인간형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문화혁명 때 실용적인 노선을 걸으려는 정치인과 지식인을 싸잡아서 주자파(走資派)라고 규정한 것도 중국판 위정척사다. 어쨌든 위정척사와 내로남불은 타자의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 자폐적인 배외주의가 엄존하게 마련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국회 법사위에서 우리 편은 인권과 정의의 편이라고 당당히 말한 (윤아무개가 우리 편이 아니라면 반인권과 불의의 편이라고 뒤집어놓고 밝힌) 법무부 장관의 어록을 보면, 총선 때 이번 총선은 반일 세력과 친일 세력의 대결이라고 말한 후 뜻을 이루고 국회부의장에 오른 인물을 비추어보면 내로남불의 정치 지형학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정권은 미일(美日) 기존 체제와 등을 돌리고, 북중(北中) 신체제를 지향한다. 특히 지금 북한은 심각한 척사관에 빠져 있다. 본래부터 주체사상이란 게, 동학군, 한말 의병, 중국동북유격대로 이어져온 척사 이데올로기의 전통 내지 정통성 위에서, 자본주의의 물질적 다양성과 결이 다른 차원의 유물론에 바탕을 둔 극단적인 배외주의가 아닌가. 오랫동안 개혁개방으로 재미를 본 중국 역시 중국몽이란 자폐의 악몽을 넘보려고 한다.
내로남불의 문제점이 공직자의 부동산 문제, 지도층의 사생활, 운동권 논리, 이상한 적폐몰이, 증오범죄의 토착왜구론 등에만 국한되어선 안 된다. 협소한 울타리에 갇힌 역사관과 현안의 외교 문제에까지 폭을 넓혀야 한다. 사족 하나 덧붙인다. 위정척사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게 동도서기였다. 명분과 실리, 아시아적 가치관과 서양의 자본주의를 접목하고 융합하는 것. 이 역사적인 전망은, 무능한 고종도 인정했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느님의 종교인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의 정체성을 확실히하고, 하느님과 별개의 철학인 도교,불교를 이해하는것도 어느정도 필요합니다.도교는 유교처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점에 주안을 두지 않고, 후대에 갈수록 불교의 보살같은 용어도 사용하여,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수천년 이어진 유교의 하느님(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