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지금 이 순간
[경일춘추]지금 이 순간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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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선 (문화예술인)
 

 

반가운 이의 전화로 외출의 기회가 찾아 왔다. 화창한 봄 넉넉한 약속으로 인해 햇살의 온기와 건강의 꿈을 가득 안고 속도 없는 걸음을 옮긴다

나뭇가지엔 새싹의 연두가 피어오르고 거리에는 새하얀 꽃잎이 차량을 따라 다닌다.

계절의 변화에 감사 하며 잠깐 지체하던 걸음을 재촉하였다

여느 때처럼 친구랑 수다 삼매경에 빠져 열심히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음악 소리와 함께 애절한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다리를 고무로 칭칭 감아 묶은 채 힘겹게 구걸하고 있는 장애가 있는 걸인이었다. 나는 지갑을 뒤적여 천원을 꺼내 바구니에 넣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구걸하는 사람이 보였다. 이런 일은 이곳 시장 인근에서 가끔 있는 일이라 무심히 걷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온 그 사람은 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의 행색을 보아하니 원래 걸인은 아닌 듯 보였고 걸인 흉내로 쉽게 뭔가를 얻고자 하는 것 같았다. 몇 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잠깐 망설였다. 돈을 주면 멀쩡한 사람이 계속 구걸할 가능성이 클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왠지 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아쉬웠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언젠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도를 내려가고 있는데 계단 한쪽에서 행색이 남루한 한 노인이 고개를 땅에 푹 숙이고 구걸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갑 속에는 천원의 지폐가 없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그 길을 비켜 오고 말았다. 그리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그 노인의 모습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꼭 천원이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만원이 그다지 큰 돈도 아닌데 더욱이 내가 하는 어떤 필요를 잠깐 자제하면 되는 것을 왜 선뜻 꺼내 주지 못했을까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리고 다음 날도 후회는 가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때의 일을 사죄라도 하는 마음으로 그 노인을 찾아 이리저리 다녀 보았으나 노인은 찾을 수 없었다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생각난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생각 여부에 따라 행동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은 내가 준비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 생각이 어떤가를 살필 뿐이다.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힘겨워 보였던 그 노인을, 그리고 그날의 후회스러운 나의 행동을.

김순선 (문화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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