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이물질 백신 주사기
[천왕봉] 이물질 백신 주사기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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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바보짓을 하거나 남에게 턱없이 지고 들어올 때 속상한 어머니는 ‘문출래만도 못한 자슥’이라 타박했다. 우리 동네서 문출래는 박복의 대명사이기보다 쌈질에서 밑에 깔려 터지면서도 ‘내겐 꾀가 있다’고 중얼댔다던 가똑똑이 캐릭터다. 실존 인물인지 가공 인물인지는 모른다. 그저 멍청이짓 해놓고 변명에 급급할 때 항용 얻어들었던 핀잔이다.

▶생각하면 그때의 변명들이 이른바 ‘정신 승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역경을 딛고 일궈낸 승리 말고, 패자 자신은 지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게 정신 승리다. 루신의 소설 아큐정전 주인공 아큐가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은 뒤 중얼댄 독백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다. “내가 아들뻘 되는 녀석과 싸워선 안 되니 나는 정신적으로 결코 패배한 게 아니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 말이다.

▶작년 하반기 온 세계가 백신 확보에 열 올릴 때 정부는 멀뚱거렸다. 그래놓고 훗날 그 실책 만회라도 하고 싶었던지 세계 최고의 백신 주사기를 개발했다고 떠벌렸다. 약병의 백신 한 방울 남김 없이 뽑아내 한 사람이라도 더 맞게 하는 주사기라 했다. 주사기가 중요치 않다는 게 아니라 정작 더 중한 백신은 놓치고서 주사기로 변명을 한 모양새가 우습다.

▶백신은 확보 못 하고 곧 죽어도 주사기로 K방역 우수성 강변하더니 그마저도 말썽이다. 이물질이 들었네 어쩌네, 70만개를 못쓰게 됐단다. 50만개는 이미 사용해버렸다! 상대에 짓눌려 코피가 터져서도 “이놈아 내겐 꾀가 있다”고 외쳤다던 문출래이든, 쓴웃음 나는 정신 승리든 상관없다. 그저 백신이나 하루빨리 맞게 되었으면….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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