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봉투 내기 바쁜 봄
[경일춘추]봉투 내기 바쁜 봄
  • 경남일보
  • 승인 2021.04.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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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영 (시인·마루문학회장)
 

유독 결혼식 봉투 내기 바쁜 봄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를 제외하고 봄은 혼인하기 좋은 계절임엔 틀림이 없나보다. 세태가 변해 예식 참여보다 봉투 오고감이 중요해지더니 이젠 계좌번호만이 덩그러니 마음 속에 남아 축하보다는 금액으로 고민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변한 길을 와도 너무 많이 왔다는 느낌이다.

결혼식 참여에 앞서 겉면에 써야할 글귀도 고민이다. 본질적으로 혼인이니 축혼 이면 족한데 혼주가 신랑측인지 신부 측인지에 따라 화혼(華婚)과 결혼(結婚)으로 구분해 적어 왔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본인의 결혼에만 화혼이라 적지 않으며 어떤 표현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는 우리 미풍양속과 관계가 깊다.

화혼(華婚)의 화는 빛날 화(華)로 풀초 변에 드리울 수(垂)다. 설문해자에는 풀초에 꽃 한 송이로 표현되어 있으며 글 그자체로 화려하고 빛나는 대상이다. 그러니 지금껏 혼주가 신부 측일 때 사용함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이유를 크게 따지지 않고 관행적으로 써 왔던 표현이다.

최근 축 결혼이라는 한자를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청원의 글을 보았다. 목에 낀 가시 같은 대목은 결혼이 여전히 한자인 것에 걸리고, 한글화에 집착하는 의도에 걸린다.

풍습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 골수에 깊이 박혀있는 뿌리와 관계가 깊다. 장가를 들던 시집을 오던 결혼을 하던 혼인을 올리던 본질은 새로운 한 가정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의 예식이다.

혼(婚)을 쪼개보면 계집여(女)와 어두울 혼(昏)이 들어 있다. 아마도 혼인이 밤에 치러졌음에 기인한 글자가 아닌가 싶다. 신랑이 밤에 신부 측에 와서 첫날밤을 치르고 신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간 것에서 시집도 등장하니 장가를 드는 것이요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닌가.

혼인(婚姻)의 글자가 재미있는 것은 다분히 장가드는 남성의 입장이 아니라 시집가는 여성의 입장이 반영된 글자라는 점이다. 婚의 갑골문자는 여성이 귀를 쫑긋하고 앉은 모양새를 상형화 했고 姻은 여성을 홀로 두고 술에 취해 큰대자로 뻗은 신랑의 첫날밤 모습이 그려져 있으니 옛날 신혼이나 오늘 날 신혼이나 술이 웬수다.

그러니 한글화에 너무 깊게 빠지다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우리 전통을 상하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부조(扶助)와 부의(賻儀)를 혼동하는 이가 있는데 부조는 경조사 모두에 쓸 수 있는 글이지만 부의는 그 자체로 상가에 내는 부조로서의 돈이나 물품이라는 점이다.

안채영 (시인·마루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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