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거대 여당 사전에 양보와 배려는 없나
[경일시론]거대 여당 사전에 양보와 배려는 없나
  • 경남일보
  • 승인 2021.04.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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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규 규칙이 수백 가지도 넘는 야구에는 불문율이란 것도 있다. 크게 이기고 있을 때는 도루를 하지 마라, 홈런 치고 과도한 세리머니는 삼가라, 상대 투수가 노히터 노런 같은 대기록을 앞두고 있을 땐 번트를 대지마라, 노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는 풀스윙을 하지마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감독과 선수들에겐 성문 규칙에 못지않은 심적 구속력을 갖는다. 어기면 빈볼이나 벤치클리어링같은 보복과 아수라장이 되는 걸 각오해야 한다.

불문율 여러 항목들엔 오늘날 볼멘 소리가 없진 않다. 승부 세계에서 이것저것 생각할 게 뭐냐는 불만이다. 하지만 불문율은 다툴 수 없는 합리성을 갖고 있다. 일테면 부자이면서 가난한 사람의 몫을 욕심내지 말라는 식의 계율이라고나 할까. 큰 점수차 패배가 뻔해진 상대를 ‘확인 사살’까지 하여 자극하지 말라는 거다. 상대 팀일지라도 다른 선수의 위업 달성을 훼방놓지 말라는 신사도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존중이다. 이는 곧 야구 종목 자체의 지속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양보인 거다. 야구의 이같은 불문율 정신은 정치판에서도 딴세상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주 새 원내대표로 윤호중 의원을 선출했다. 선거 참패 끝인지라 민주당의 국회운영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을 끈 대표 선출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지난 1년 동안의 거여 일방독주가 그대로 이어질 거란 관측이다. 윤 원내대표는 선출된 직후 개혁의 바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검찰 개혁, 언론 개혁, 국민들께서 바라는 개혁입법을 흔들리지 않고 중단 없이 하겠다”고 했다. 물러난 팀처럼 대야 강경 모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향후 개혁과제를 진행할 때는 입법 청문회를 통해 야당 아닌 국민과의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180석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다. 생각 속에 협치는 없어 보인다.

그는 민주당이 싹쓸이 독점하고 있는 국회 상임위원장 재분배에도 부정적이다. 2년차 원내대표에게는 원 구성에 대한 협상 권한이 없다고 했다. 원 구성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한 거다. 그의 당선 일성에 쇄신은 없고 ‘개혁입법’만 있었다. 원내대표 경쟁자였던 박완주 의원은 상임위원장을 야당에 일정 부분 할애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공약했었다. 박 의원은 전체 169표 가운데 65표를 얻었다. 그런데도 그 공약은 윤 원내대표 선출 후 의미 없는 걸로 치부된다. 대표적 강성 친문인 정청래 의원이 법사워원장에 힘있게 거론되는 당분위기가 이를 말해준다. 민주당 친문 의원들은 상대방을 좀 배려하고 양보하면 안 되는 걸까.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화끈히 수용할 수는 없는가.

윤 원내대표는 부동산 법률들에 대해 “어떤 효과를 내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부터 점검하겠다”고 했다. 주택정책 템포를 조절하겠다는 말이냐는 물음에, 현재 진행되는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제도를 미세 조정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부동산 정책도 궤도 수정은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도 여야 협치는 바라기 어려울 듯하다. 절벽이 보일 뿐이다.

거대 여당의 오만과 독주가 지난 선거 참패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겸손과 실력이 부족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여당은 변화와 쇄신은 생각을 않는다. 여당 소속 국회부의장이 야당의원 대정부 질의 끝에 ‘신났네 신났어’라고 조롱하고도 항의하는 야당에 사과를거부하다 이틀이 지나서야 ‘오해’운운 하는 모습에서 여당의 오만을 본다.

180석 여당은 국회에서 못할 일이 없다. 지난 1년간 그랬다. 하지만 상대 존중의 마음이 담긴 야구장 불문율도 종종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라운드의 불문율은 왜 정규 규칙 못지않게 존중되는가. 그것이 왜 오랜 전통이 되어 야구장 질서를 이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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