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태어났다. 하나의 생명이 이토록 오묘하고 경이롭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딸 바보’, ‘손자 바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친구들은 놀린다. 아직 젊은데 벌써 할아버지냐고.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손녀를 보면서 내가 대면하고 정을 주고받은 가족사가 떠오른다. 세대로 계산해보면 5대를 함께한 가족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세대의 중간에 나와 처가 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5대와 함께한 추억의 순간들이 나의 현재 모습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손자의 무리한 어떤 요구도 다 들어주시던 할머니. 일하시느라 바쁜 보모님을 대신해 산과 들에서 놀고 있는 배고픈 손자를 위해 언제나 망태기에 준비한 새참을 지고 오셔서 허기를 달래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애증(愛憎)이 교차했다. 하지만 새벽 일찍 깨워서 공부를 하게했던 어린 시절의 습관이 평생을 ‘새벽형 인간’으로 보내고 있는 것은 오롯이 아버지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위 세대에서는 어머니만이 생존해 계신다.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인내와 사랑의 표상이시고 자랑스러운 어머니시다. 어떻게 그 작은 몸집에서 이토록 큰 위대함을 가져오셨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건강하게 오래사시기를 기원해 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추억만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모두들 힘들어 한다. 청춘은 방황하고 있고, 이 땅의 중년들은 상실과 우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끝도 없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청춘들이 절망하고 있다. 하물며 코로나로 살기도 어려운데 하늘은 왜 이토록 잿빛일까.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1인 가구는 기존의 가족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40% 정도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는 청년 중심으로 1인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수원이나 성남시, 서울의 관악구는 1인 세대가 10만 명을 넘어 점차 ‘싱글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에 농촌은 고령화로 노인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인천시 옹진군은 무려 60%가 1인 가구라 한다. 고독사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듯하다.
이렇게 기존의 공동체가 해체되고 살기가 힘든 시기에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가 필요하다. 이제 가족이 그 역할을 해줄 차례다. 힘들 때 위로해주고, 어려울 때 조그마한 도움을 주는 가족이 돼야한다. 일단 자주 만나야 한다. 만나서 서로 대화도 많이 해보자. 가까운 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해보자. 그러면 분명 가족은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케렌시아’가 돼줄 것이다. 삭막한 시대, 가족이 최고의 힘이다. 가족은 삶의 원천이고 에너지이다. 가족, 사랑이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동호 (선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세계미래도시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