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올해 아흔네 살 되신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20여년을 홀로 살면서 매일 같이 실버 카(노인보행기)를 밀고 아파트단지를 열 바퀴씩 돈다. 정신 줄을 놓아 몇 바퀴 돌았는지 까먹을지 몰라 작은 풀잎 열 개를 따서 실버 카에 담아 한 바퀴 돌때마다 하나씩 버린다. 2G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 손에 꼭 쥔 채 차량이 올까봐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며 걷던 할머니께서 그제 오후 우연히 마주치자 대뜸 “동사무소 전화번호 좀 알아 달라”고 하신다. 평소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다 보니 스스럼없이 대하신다. 뭐하시게 전화번호가 필요하신지 물었더니 “도대체 언제 주사 맞는지 알아봐야 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총기 있을 때 맞아야 될 낀데 와 이리 연락이 안 오느냐”며 내친김에 “그냥 동사무소에 전화해서 좀 알아 봐 달라”고 통사정을 하셨다. “주사 맞아야 된다고 조사는 해 갔는데, 여지껏 아무 연락이 없어 뭔가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면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다들 맞고 있던데, 당신의 이름이 빠져서 아직 연락이 없는 줄로 알고 계신 듯 했다. 백신 수급차질 문제로 인한 접종 중단사태를 한참 동안 풀어서 중언부언 설명해도 긴가민가하면서 갸우뚱한 표정이다. 경남도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진주지역의 방역 현주소를 보는 듯해 답답했다. 그 많은 공무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마침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과 기자회견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백신접종으로 일상회복의 대장정이 시작됐다”며 “목표를 상향해 6월 말까지 1300만 명 이상 접종할 계획이고 9월 말까지 접종대상 국민 전원에 대한 1차 접종을 마쳐, 11월 집단면역 달성 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길 것이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과 수급불안정으로 인해 백신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기업들까지 힘을 보탠 전방위적 노력으로 우리 국민 두 배 분량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3차 접종 가능성과 변이 바이러스 대비, 어린이 등 접종대상 확대, 내년 물량까지 고려해 추가 물량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고도 했다.
‘방역 모범국가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관리범위 내로 코로나를 통제 중’이고, ‘백신접종에 속도를 내 집단면역으로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연설은 대 국민 희망고문 연설이나 다름없었다. ‘현실과의 괴리’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지금 신규 1차 접종은 이달 말까지 중단돼 있는 상태다. 기존 예약자나 백신이 남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1차 접종이 가능한 실정이다. 백신수급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희망가를 불러댔다. 오죽했으면 야당은 ‘국민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라거나 ‘자화자찬이 아니라 반성문을 내놨어야’라고 했을까.
공자 말씀 중에 ‘안정사(安定辭) 안민재(安民哉)’란 말이 있다. ‘말을 안정되게 해야 백성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언사를 잘하는 것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덕목이다. 국민에게 보내는 연설이나 메시지는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을 제시하는 메시지야 말로 말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질 수 있는 법이다. 뜬금없는 자신감이나 섣부른 희망가는 망상일 뿐이다. 허공 속 독백 같은 대통령의 설익은 낙관론이 나올 때 마다 어김없이 터졌던 악재의 데쟈뷰는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통령의 좋은 말씀만 믿고 이제나 저제나 백신 맞을 날만 무한정 기다리시는 아흔네 살 할머니의 이 불안한 나날을 누가 언제 어떻게 잠재워 줄 수 있을까.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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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제사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