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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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5.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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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수필, 순례기(17)
지난 회는 조정자 작가의 수필 <배내기> 읽기였다. 화자가 어린 시절 ‘소 풀 먹이기’했던 이야기와 새로 데리고 온 ‘배내기’ 소 키우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유년에 겪었던 체험이 한 편의 수필로 씌어진 것인데 농촌의 서정이 때묻지 않은 순수 언어로 옷 입혀져 읽기에 부드러웠다. 아버지와 딸이 나누는 삶의 체험들이 한없이 다정했다. 소와 인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면서 농가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청정무구하다 하겠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한 수필로 평가된다.

두 번째 수필은 <잃어버린 소>이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마당은 달빛을 받아 환하였다. 엄마가 안 보였다. 아버지도 안 보였다. 5촌 아재가 집 밖에서 속속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횃불을 건네 주며 바쁘게 내보내고 있었다. 분주한 움직임에 겁먹은 나는 자동으로 고개가 마구간으로 갔다. 마구간이 비었다. 있어야 할 소가 안 보였다. 아재는 급히 달려와 나를 방으로 몰아넣었다. 방문을 차고 나와 마구간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 없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소가 없으면 안 되었다. 왜 안되는지도 모른다. 그냥 안되었다. 엄마가 안 되는 이유와 내가 안 되는 이유는 다르다. 엄마를 부르며 뛰어 나갔다. 그때 엄마는 소였다. 소에게는 이름이 없어 그리 불렀다. 그렇게 불러대도 소는 알아들을 것이다.”

작년 가을에 온 송아지는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치며 곧 해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 사이 소는 산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먹이지 않고 낮은 산이나 언덕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뜯게 했다. 그러던 소였다.

“횃불을 들고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소는 놀라면 설사를 한다는 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온 사람 중에는 높은 엄남고개를 넘기 전에 길바닥에 설사가 줄줄 흘려져 있더라고 하였다.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다시 올라가 보았으나 그 길로 소는 영영 사라졌다. 원래 소를 잃어버리면 소 값의 두 배로 물어줘야 한다. 우리는 그만한 형편이 못 되어 대신 일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주인은 다시 송아지를 맡기며 잃어버린 소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낯선 논에서 아버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 등을 떠밀어 한창 농번기에 거들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소를 잃고 5년 뒤 엄마도 쉰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만 억지를 부려도 엄마는 소를 따라서 간 것 같다. 내가 찢어 놓은 하늘의 파편을 안고.”

조정자 수필은 이렇게 애틋하고 아픈 듯한 시골 농촌의 서정을 녹여내고 있다. 작가의 현주소는 고성도 아니고 농촌도 아니고 특례도시 창원이다. 그 대조적인 환경을 떠올리니 필자의 시골 산청의 땡깔 같은 서정을 떠올리게 된다.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 내 키에 몇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어느해 여름이던가 / 소고삐 쥔 손의 땀 만큼 씹어낸/ 망개열매 신물이/ 이 길가 산풀에 취한 내 어린 미소의 보조개에 괴어서,//해 기운 오후에 이미 하늘 구름에 가 영 안오는/ 맘의 한 술잔에 가득가득히 넘친 때 있었나니//내려다 보아/ 매가 도는 허공의 길 멀리에/ 때 알아, 배먹은 새댁의 앞치마 두르듯/ 연기가 산빛 응달 가장자리에 초가를 덮을 때/ 또 내려가곤 했던 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 솔숲에 나 있었다.”(강희근의 시 <산에 가서>)

조정자의 농촌수필 <술 따르는 소녀>가 그 뒤를 잇는다. 요즘 TV 미스터 트롯에 <막걸리 한 잔>이 인기곡이다. 시골에서는 막걸리를 농주라 했고 들판 일꾼들에게 새참으로 기본 품목인데 수필 속 화자는 학교 갔다 오는 시간이 새참 시간에 맞물리면 안주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뛰어서 배달하기 일쑤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엄마는 누룩을 치대다가 말고 풀죽이 허옇게 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고는 준비해둔 보자기와 주전자를 급히게 건네었다. 보자기 속에는 몇 가지 안주를 쟁반에 담아 싸고 주전자에는 막걸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엄마의 다급한 호흡을 건네받아 힘껏 달렸다. 막걸리가 출렁거리며 바닥에 질질 흘렸다.(아버지는 시계는 없어도 시간은 알았다. 그날 따라 엄마는 술을 빚다가 새참 때를 놓쳤다.) 언덕을 넘어서자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만’ 전령사 딸은 숨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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