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어르신 진지 드세요
[경일춘추]어르신 진지 드세요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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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선 (문화예술인)
 


따사로운 햇살이 온 세상을 비출 때면 언제인가부터 그곳에선 옹기종기 무리 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에는 힘겨움이 역력한 표정의 사람들 그 흔한 신발 한 켤레 없어 짝짝이 신발 차림의 할아버지, 그다지 나이는 많이 보이지 않으나 행색이 매우 남루한 젊은이, 도저히 이 무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복 차림의 깔끔한 노신사, 바짝 메마른 체구, 주름으로 움푹 패인 얼굴의 할머니, 한쪽 팔만 겨우 힘겨워 보이는 장애가 있으신 노인, 거동이 불편해서 몇 번이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 간신히 다가오는 할아버지, 친구 따라 처음인 모양의 조금은 수줍은 모습의 할머니 누군가로부터 소문을 들은 양 멀리서 이 시간을 생각하고 고생하며 걸어온 누추한 차림의 몇몇 사람들 그리고 온 얼굴에 때 구정물이 범벅인 아이까지, 천막이 쳐지고 몇 명의 자원 봉사자가 제 위치를 잡노라면 누가 줄 세워주지 않아도, 식판 있는 곳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봉사자들의 특별한 말이 없어도, 아무런 불만이나 질문 없이 차례차례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음식을 받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식사한다. 약 3분의 소요 시간이 경과 되었을까.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이 일어나 식판, 국그릇 수저를 차례로 놓고는 말없이 제 갈 길을 가버린다. 누구 한 사람 안내하는 이가 없는데도 아마 많은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지 싶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막은 걷히고 봉사자들을 태운 차량은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식사 후 흩어지는 그들의 모습에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별로 없다. 그저 말없이 현실에 적응해 나갈 뿐이다. 모두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아닌 듯 보이지만 마음 한편에선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름다운 미덕인 봉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무나도 애쓰는 자원 봉사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 봉사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원자들도 있어 안타깝다

음식으로 배를 채워 주는 것이 하루를 버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냥한 격려의 한마디로 용기를 더한다면, 아마 건강한 생활로 이어지게 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봉사활동에 대해 반성의 기회로 삼으며, 더불어 사랑의 행위에 가려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운 봉사의 활동이 우리 사회 전반에 물들어 가길 기대해 본다.

김순선 (문화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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