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숙 (콩살림지기)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은 모두 콩의 변신을 돕는 주역이셨다. 나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여서 콩을 볶아 주기도 하고 콩자반이나 두부로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시기도 하고 콩물을 해주시기도 하고, 방 한 모퉁이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키우기도 하셨다. 찬바람이 불 즈음 어머니는 청국장과 메주를 만들기 위해 가마솥 한 가득 콩을 삶으셨다. 위장에 좋다는 청국장은 발효되면서 특유의 쿰쿰한 냄새로 내 코를 괴롭히던 기억도 난다. 콩이 변신한 장맛은 한식 맛의 성패를 좌우 한다.
집집마다 연연세세 콩의 변신 법을 익혀서 그 맛으로 기억되는 전통 한국 음식을 먹고 살아가면 비만도 없고 영양의 균형이 맞을 텐데…. 콩살림을 위해 지난 겨울에도 콩을 삶고 빻고 모양을 만들어 처마 밑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메주를 매달기도 하고 황토방에서 띄우기도 했다.
겨우내 우리 부부는 온 마음을 다해 어머니가 만든 정성이 느껴지는 가장 맛있는 멋진 콩의 변신을 위해 말을 삼가고 마음을 모았다.
된장 맛을 내는 데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우선 콩이 좋아야 한다. 한 알 한 알 알차고 튼실해서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띄우는 과정에서의 어울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여러 생명체들이 모여 콩의 영양분을 먹고 효소를 만들어 단백질도 분해하고 우리가 좋아 하는 맛으로 숙성해야 한다. 어느 한 메주 균이 집중적으로 많으면 제대로 장맛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균이 활성화되도록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서 좋은 환경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한다. 메주 속 미생물의 좋은 활약을 위해 우리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시간을 더하며 깊은 장맛을 보기 위해 기다린다. 해마다 미생물과 해와 달 그리고 바람이 같지 않기에 25년을 해도 꼭 같은 장맛이 되기는 어렵다.
겨울에 메주를 띄우고 이른 봄에 장을 담고 여름에 장 가르기를 해서 2차 숙성이 들어가면 농부가 농사를 짓듯 꼬박 1년이 걸린다. 올해도 그렇게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고 메주가루를 내어 막장을 담고 고추장을 담았다.
우리 장을 맛보고 어머니가 담아주시던 그 맛이 난다고 할 때 그 분들의 기억 속의 어머니를 소환해드린 것 같아 뿌듯해진다. 콩 중에 최고의 콩은 역시 알콩달콩이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한 그릇을 놓고 온 가족이 웃음을 나누는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도 콩의 멋진 아니 맛진 변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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