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스승과 제자
[경일춘추]스승과 제자
  • 경남일보
  • 승인 2021.06.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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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진주교원단체총연합회장)
 

 

다산(茶山)정약용은 유난히 8자와 인연이 깊다. 그는 1818년 8월에 유배서 풀렸으며 유배 기간도 18년이다. 75세에 행복하게 제자들 울음소리와 자식들의 애통 속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57세 때 고향 마재로 왔는데 자신의 정신과 혼이 깃든 강진초당(草堂)을 떠나며 제자들과의 석별이 아쉬워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다.

“사람이 귀한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있음을 즐기다 헤어져 서로를 잊는다면 그것은 짐승과 같다”며 다신계에 새긴다. 제자 여럿은 서울까지 스승을 모시고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으며 해마다 좋은 차를 모아 스승에게 합심차(合心茶)를 올렸다. 그가 유난히 아낀 제자 황상(黃裳)은 1836년 스승 회혼례에 참석코자 천리길을 오니 이 역시 18년 만에 재회이고 황상의 나이 48세 때다. 다산은 병이 깊어 누워서 사랑하는 제자와 마지막 재회를 하며 부채를 정표로 준다. 황상은 눈물로 스승과 이별하며 돌아가는 길에서 부음을 듣고 한걸음에 되돌아 달려온다.

10년 후 스승의 기일에 묘를 찾은 황상의 손에는 스승이 준 부채를 들고 있었다. 다산의 아들은 감격하여 부채에 시(詩)를 써주니 아들과 황상 사이에 정황계(丁黃契)가 결성된다.

신록 속 남강(南江)의 여유로운 흐름을 보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더욱 향기를 발하는 사제간의 도타운 정(情)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고,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다’는 글귀가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다산에 비추어 보니 반백년 제자를 키운 나는 정말 낯을 들 수가 없다. 사람들은 모두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러니 다툼이 하루도 그치지 않는다. 스승은 학위가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낮아져야 스승이고 섬겨야 스승이다. 베풀어야 스승이고 감사함을 표할 줄 알아야 스승이다! 내가 그들의 스승이 아니고 그들이 나의 스승임을 깨달으니 벌써 세월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

진정한 스승은 배우기를 좋아하고 끊임없는 신독과 수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꾸 나태해지는 자신을 꾸짖는 것이 점차 관대해진다. 저 깊은 강물처럼 모든 것을 안고 가기엔 내 가슴이 너무 빈약함을 느끼며 나를 스쳐간 나의 제자들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진주교원단체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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