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의병박물관
[경일칼럼]의병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06.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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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의령읍소재지에서 개를 몰고 산책하는 주민에게 의령박물관 위치를 물었다. 한참 머뭇거리더니 의령에는 의령박물관은 없고 의병박물관이 있단다. 의병교 건너 충익사 담과 의령천 사이 길을 조심조심 운전으로 하천변에 주차하고 의병박물관을 찾았다.

고고역사실은 의령지역의 선사시대부터 초기철기, 가야,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유적을 기록 전시하고 의령의 인물로 우륵과 안희제를 소개하고 있다.

우륵은 의령 부림 지역의 사이기국 사람으로 5세기 후반에 태어나 음악적 재능이 대가야까지 알려져 가실왕의 요청으로 우륵 12곡을 짓는다. 6세기 중반경 사이기국은 신라에 복속되고 우륵은 신라로 건너간다.

충주박물관에 시대별 인물을 정리하였다. 신라 시대 인물로 강수, 김생 그리고 길고 넓은 이마에 머리와 수염은 하얗고 노란 저고리 차림의 우륵을 볼 수 있다. 진흥왕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는데 한강 유역은 물론 국원(충주)을 차지하고 주민을 이주시켰는데 우륵도 포함되었다.

우륵은 하림궁에 머물며 진흥왕께 음악을 연주하였다. 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였다. 552년 계고, 법지, 만덕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쳤고 그 후 가야금곡은 진흥왕의 장려 정책에 의하여 궁중음악이 되며 185곡의 가야금곡이 남게 되었다. 충주 탄금대는 우륵이 금(琴)을 탔다(彈)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부림 입산마을에서 태어나 조국의 근대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업가이자 광복운동에 헌신한 애국자이다. 백산 상회를 설립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했다.

해방이 되고 환국한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은 안희제의 소식부터 물었다. 백범은 백산이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한다.

경주 최 부자(최준)는 경교장에서 백범을 만나 독립자금이 정확하게 전달된 사실을 알고 2층 마루로 나가 남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의령 안희제 묘소를 향하여 목 놓아 울며 말했다.

“백산, 준을 용서해 주게! 내가 준 자금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절반이라도 전달되었으면 다행으로 늘 생각한 준을 용서해 주게.”

유물전시실은 의병의 역사와 기록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경상우도 의령지역의 곽재우 의병부대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임진년 전국 의병장들의 창의 상황을 비롯한 곽재우 활약상과 전적지를 소개 하며, 보물 671호 장검 등 곽재우 유물을 비롯한 각 의병장들의 유물, 임진왜란의 조선과 왜군의 무기와 갑옷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다.

1592년 4월 22일 곽재우가 의령 유곡 세간리 현고수를 울리며 의병활동을 한 것이 시초이다, 7월에 곽재우와 휘하 17장령(將領) 군무가 분장되고 작전지역이 정해진다. 영장 윤탁 용연에 주둔하고, 선봉장 심대승 장현, 기찰 심기일 정호, 복병 안기종 유곡, 수병장 이운장 낙동강 서편, 돌격장 권 란 옥천대, 수병장 오 운 백암, 곽재우 유곡 세간에서 전군을 통제하였다. 낙동강에서 남강의 정암에 이르기까지 정찰대가 총총히 배치되어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으로 연전연승하였다.

열린 담장 문을 지나면 충익사이다.

연못가에 경남기념물 83호로서 조사된 최고 수령 500년의 모과나무가 있다. 가례면 수성마을 당산나무를 1978년 옮겨 심었다.

충익 사당으로 걸음을 옮겨 향을 사르고 예를 올리고 위패함을 세어본다. 18개로 알았는데 20개이다. 하나하나 셈해도 20개이다.

중앙에 위패함 3개를 세웠다.

가운데 충익공망우당포산곽선생재우 신위함(忠翼公忘憂堂苞山郭先生再祐 神位函)의 좌우에 임란창의무명의병제위 신위함(壬亂倡義無名義兵諸位 神位函)를 두어 20개가 되는 것이다.

포산 곽재우 위패함 좌우에 무명 의병 위패함이 있다. 이름 있는 장령은 집안에서 대대로 추모하겠지만 이름 없는 의병을 장군과 함께 모시겠다는 것이다. 무명 의병을 제대로 예우하는 충익사 관계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위패(位牌)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이다. 행사에 개봉하고 평소는 궤안에 있다는 ‘函’으로 표기하는 것도 본 받을 만하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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