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무덤’ 전락한 국도변 투명 방음벽
‘새들의 무덤’ 전락한 국도변 투명 방음벽
  • 백지영
  • 승인 2021.06.16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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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지침·고시 마련했지만 기존 설치시는 관리주체 ‘자율’
지난 13일 산청군 신안면 후천마을 인근 국도 3호선. 왕복 4차선 도로와 투명 방음벽 사이 갓길을 따라 멧비둘기 10여 마리 사체가 흩어져 있다. 사체 인근 투명 방음벽에는 진회색 사선 모양 얼룩이 남아있다. 이곳을 인식하지 못해 부딪힌 새들이 추락 직전 남긴 ‘충돌흔’이다.

도로변 주민들을 소음·분진에서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투명 방음벽이 조류에게 ‘죽음의 벽’이 되고 있다.

올해 3월 환경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를 개정하고 투명 방음판 설계 단계에서 조류 충돌 최소화 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했지만, 이미 설치된 방음벽 등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교통 소음 저감을 위해 설치되는 투명 방음벽은 주택가를 접한 대형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물이다. 불투명·반투명 재질 대신 투명한 재질이 사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관 저감 우려와 시야가 갑갑하다는 민원이다.

인간의 다양한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설치된 투명 방음벽이 조류 등에는 죽음을 부르는 벽이 된 지는 오래다. 야생조류는 투명성·반사성을 가진 유리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자연환경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부 등이 지난 2017년 12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관련 조사에 나선 결과 국내에서 연간 800만 마리의 조류가 충돌로 폐사한다는 추정이 나왔다.

환경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새들이 투명 방음벽 등을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세로 5㎝, 가로 10㎝ 간격으로 유리창에 무늬를 넣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아직 적용되지 않은 투명 방음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류 충돌 방지 시공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방음벽 관리 주체들이 ‘권고’ 사항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올해 환경부가 진행 중인 조류충돌 방지테이프 지원사업(전국 10곳을 선정해 지원)에 따르면 높이 5m, 폭 400m의 방음벽(가용면적 2000㎡)에 붙일 스티커 비용(시공·장비 비용 제외)만 1500만원 상당이다.

후천마을 인근 국도 3호선을 관리하는 진주국토관리사무소 역시 이 같은 이유로 조류 충돌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해당 방음벽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진주국토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일부 방음벽에는 관련 시공을 하기도 했지만 비용 때문에 모든 곳에 조류 충돌 방지 조치를 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이번 취재로 해당 구간의 심각성을 절감한 만큼, 우선 순위를 고려해 시공 회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류 충돌 방지 대책으로 5㎝×10㎝ 간격 격자 등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구식’으로 전락한 맹금류 모양 스티커 부착을 거론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정은아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조류 충돌 방지 작업은 새로운 구조물을 짓는 것과는 달리 품이 적게 드는 만큼,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13일 산청군 신안면 국도 3호선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옆으로 멧비둘기 10여 마리의 사체가 흩어져 있다. 도로 관리 주체인 진주국토관리사무소는 문제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조류 충돌 방지 시공 등을 하지 않고 방치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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