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진주 호국역사의 결정체 ‘진주성’
[시민기자]진주 호국역사의 결정체 ‘진주성’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2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반만년 역사 속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려왔다. 침략국과 나라는 바뀔지라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한반도 위에 살아가는 백성들, 국민들의 호국정신이다.

침략의 역사 속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이 땅의 백성들은 무기를 들고 의병이 되었다. 멀게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이 국가 부흥을 위해 일어난 의병이 있고, 임진왜란, 병자호란뿐 아니라, 가까이에는 일제강점기에 항일투쟁을 했던 항일의병과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있다.

일제의 패망 이후에 남과 북이 갈라지고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 하는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까지 민족의 호국 정신은 이어져 왔다. 진주성에서도 우리 민족이 가진 호국정신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진주성 호국사를 지나, 서장대를 거쳐 촉석루로 가는 길에는 삼일 독립운동기념비와 진주지구 전승비가 있다. 1971년에 세워진 삼일 독립운동기념비는 진주에서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진주에서는 3월 18일을 시작으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진주의 삼일 운동은 기생과 걸인도 참여했는데 나라를 위한 마음이 신분과 출신 상관없이 대한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만여 명의 각계각층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가지런히 놓인 삼일 독립운동기념비 뒤로 마치 Victory(승리)의 V를 표현한 듯한 형태로 진주지구 전승비가 있다. 1968년 육군 건설공병단은 진주 지역에서 북한군을 격퇴한 킨 특수임무 부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전승비를 세웠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공격과 동시에 빠르게 남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하동과 진주지역에서 미군의 저지선을 돌파하고, 마산의 서쪽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에 맞서 미군 제25사단에서 킨 특수임무 부대를 보내 반격을 시작했다. 국군 해병대와 민병대, 진영학도의용군, 한국인 노무자 500명 도 전투에 참가했다.

쏟아지는 적군의 총알뿐 아니라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전투는 11일간 지속되었고 마침내 승리했다. 전투 과정에서 북한군 제6사단은 병력 4000~5000명과 전차 13대 등 큰 손실을 입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피를 흘린 영웅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있을 수 있다.

나라를 지킨 이들의 공훈에 보답하자는 것이 호국보훈이다. 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보훈은 그들이 끝내 지키고자 했던 신념, 가치를 되새겨보는 것이다. 진주성에서 호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김해찬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독립운동기념비와 진주지구 전승비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