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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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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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동화작가 한수연의 수필집과 작가로서의 중량(3)
동화작가는 수필도 꽁트이거나 단편 같거나 하여간에 구성적이다. 그중 ‘어떤 갑장’은 그 구성에서 긴장과 감동의 물결을 친다.

늦가을 새벽 기차 안은 썰렁할 정도로 비어 있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보니 몇 간 앞에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노인들의 눈 앞에 종이 한 장을 윽박지르듯이 내밀고 서 있었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글씨가 안 보인다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 남자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가 나에게까지 풍겼다.

자리를 잘못 잡았구나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남자는 벌써 나의 의도를 파악한 듯 뚜벅 뚜벅 내 앞에 와 섰다. 술냄새와 함께 종이 한 장을 쓱 내밀었다. 그것은 절도죄로 십년 동안 복역하고 며칠 전에 출감했다는 것을 XX교도소장이 발행한 신분 증명서였다. 그런데 출생연도가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절도죄로 십년씩이나?’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다. 동갑내기라니, 잘못 살이온 그의 인생에 화가 났다. 감추어도 시원찮을 범죄 이력을 무슨 자랑이라고 보여주는 것일까? 혹시 이것으로 위협하며 약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순간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는 ‘우동 한 그릇’을 읽어보았느냐 물었다. 순간 눈을 번쩍 뜨며 읽었다고 말했다.

‘우동 한그릇’은 작가가 아닌 필자도 읽은 일이 있다.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이다.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 허름한 차림의 부인이 두 아들과 같이 와서 우동 1인분을 시키자 주인이 이들 몰래 2인분을 담아주는 배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섣달 그믐 밤 10시 그 다음해 그 다음해도 그 세 모자는 그 시간에 우동 한 그릇을 시켰지만 여전히 주인은 듬뿍 우동을 담아 주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 몇 해를 그 그믐날 우동집에서는 세 모자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 뒤 이들이 장성하여 나타났는데 한 아들은 의사가 되고 한 아들은 은행원이 되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이야기를 세밀하게 하면 아주 감동 자체인 이야기였다.

“그분은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가시고기’도 읽었소?”하자 화자는 “그럼요 많이 울면서 읽었지요.” 그 순간 그는 십년 동안이나 복역한 전과자가 아니라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독자이며 같은 나이테를 가진 갑장이었다.

필자는 ‘가시고기’ 물론 그 책을 읽었다. 부성애를 다룬 조창인의 소설인데 한창 읽히고 있을 때 진주의 필자 이웃에 개천예술제 백일장 스타 중고생 자매가 있었다. 부모님도 그 책을 읽었고 언니도 읽었는데 어느날 식구들이 출타하고 없는 동안 자매중 동생이 혼자 집을 지키며 그 책을 읽었다. 너무나 슬픈 내용에 중학생 소녀는 울먹이다가 그 자체로 감당이 되지 않아 엉엉 울고 있었다. 출타했다가 들어온 언니가 직감으로 ‘가시고기’를 읽었음을 알고는 “그래 내가 너 혼자 있을 때 읽으면 안된다고 했잖아! 울지 마! 소설이야 아버지 곧 들어오실 거야!”이런 에피소드가 생기리만큼 그 소설은 공전의 지가를 올리고 있었다. 덧붙이면 자매중 언니는 현재 KBS 월드 라디오에 근무중이고 동생은 잘 나가는 제일기획에 다니고 있는 모범 시회인이다.

수필에서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는데 수필로 돌아오자.

그는 다시 세 번째로 ‘아버지’는 읽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것도 읽었소, 하고 대답하자 갑자기 통로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선생님 용서해 주세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용서해 주라는 말인가. 이미 지은 죄값으로 10년 세월을 감옥살이로 보낸 사람이 처음 만난 여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무릎까지 꿇다니! 책이 주는 감동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세 권의 책을 같이 읽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 남자는 내가 그렇게 가까이 느껴졌을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시꺼먼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는 야구르트를 무척 좋아했소. 십리 길을 걸어 읍내까지 야구르트를 사러 가요. 그런데 야구르트를 딱 한 병 밖에 사오지 않았소. 돈이 그것밖에 없어서요."
 
야구르트 한 병을 사서 십리를 걸어온 어머니는 오누이를 마루 끝에 앉히고 차례로 야구르트를 마시게 했다. 그가 반 이상을 마시고 나면 나머지는 딸에게, 그리고 어머니는 야구르트 병에 물을 부어 흔들어서 마셨다.

다음 장에 가면 한 줄을 사와서 모두 한 병씩 먹어보자. 수많은 장날이 지나갔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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