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키코 재앙, 그 뼈아픈 교훈
[경일시론] 키코 재앙, 그 뼈아픈 교훈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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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교수)
키코(KIKO)는 약정 상한과 하한을 넘어 환율이 변동할 경우 옵션이 발효(KI, Knock-In)되거나 소멸(KO, Knock-Out)되는 통화옵션 거래다. 수출기업은 환율이 내려도 KO 하한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야 수출대금을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팔 수 있어 환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KO 하한 아래로 떨어질 경우 풋옵션이 소멸돼 환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된다. 환율이 올라도 KI 상한 아래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환율이 KI 상한 위로 한순간이라도 오르면 은행에게 콜옵션이 주어져 옵션 만기 때 수출금액의 2배를 행사가격으로 은행에게 매도해야 하는 해괴한 조건이 붙여졌다. 실제 예로 KO 상한이 1100원이고 행사가격이 1000원인데 환율이 1300원으로 오르고 수출실적이 5000만 달러라면 기업은 300억원 [5000만원×2(1300만원-1000만원)]의 손실이 나는 구조다. 환율이 오를수록 행사환율과 시장환율 격차가 벌어지고 수출액이 많을수록 기업은 치명적 손실을 보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우리경제가 겪은 소위 ‘키코 재앙’은 당시 원화가치가 오를 것 같은 잘못된 분위기에서 실상을 아는 어떤 세력이 원화가치의 급락 또는 급변동 가능성을 예측하고 ‘키코 음모’를 기획했을 것이다. 이 세력이 “원화 절상(환율하락)이 예상된다”며 “비정형 옵션거래인 키코에 가입해 환차손 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수출기업을 부추기면서 비롯됐다. 그 사탕발림 속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독이 숨겨져 있었다. 하나는 당시 외환사정 이면을 들여다 보면 환율 급등 또는 급변동 위험이 내연하고 있었으며, 또 하나는 키코 구조는 수출기업 환리스크를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떠안게 만드는 구조라는 점이였다.

복잡한 금융 관련 정보와 어려운 금융지식을 거머쥔 금융회사와 수출에만 진력한 수출기업이 벌인 머니 게임의 결과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키코 재앙이 한국경제에 끼친 폐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아직도 그 악영향이 크게 남아있다. 먼저 유망 수출기업 도산사태는 우리나라 수출산업 경쟁력을 잠식했다. 다음으로 중견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하여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가 더욱 심화되었다.

키코 사태는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을 넘어 가짜정보(pseudo-information)를 이용한 사건, 즉 외환보유액의 허실과 복잡한 상품설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을 함정에 빠뜨린 재앙이었다. 수출기업들이 외환시장의 진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는 장막 뒤에서 그 같은 사실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키코 상품설계는 여우를 피해가라고 친절을 베푸는 척하면서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는 동굴로 안내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모럴해저드 한계를 넘어선 올가미라고 판단된다. 당시 우리나라의 대외 지불능력 상황과 그 변동 방향을 간파하고 있었다면 키코 상품설계에 도사리고 있었던 무서운 함정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키코 재앙’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금융산업 경쟁력이 세계 하위 수준이라는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융부문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실물부문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존재한다. 금융회사는 어디까지나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 탐욕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기약하기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그 당시 중견 수출기업들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수출 경쟁력 약화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었고, 고질적 경제력 집중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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