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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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7.0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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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언어미학의 대표시인 고영조(1)
시인 고영조! 우리가 “신사숙녀 여러분!”했을 때 ‘신사’에 속하는 시인이 고영조다! 필자는 최근 나온 고영조 시집 ‘길 모퉁이 카페’를 아직 펴들지 못하고 있을 때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 박우담 회장이 “새로 나온 시집 중에 새로나온 시집이 길 모퉁이 카페입니다”하고 일러 주었다. 고영조 제8시집, 창원의 ‘불휘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불휘출판은 지역의 한 모퉁이를 밝히는 외등 같은 존재로 필자에게는 그냥 엔돌핀으로 스치는, 스며드는 불빛 같은 존재로 깊이 다가와 있지 않은가?

그냥 저만치 두고 바쁜 일정이 흐르는 중에 우선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번호를 돌렸다. 고 시인은 늘 푸른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경남지역에서 언어미학의 차원에서 필자에게는 거의 유일한 친구에 속한다. 그는 1970년대 대구 만촌동 시절의 김춘수 시인을 떠올려 주었다. 필자에게는 김춘수 하면 그냥 친숙한 문학가요 시인이요 배경과 같은 선생 시인이다. 그는 만촌동에 가서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내놓았을 때 한 자리에서 다 읽어 주더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김춘수 선생을 한 번도 마주 본 일이 없다. 마산에서도 통영에서도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대면해 본 바가 없다. 오늘에 만나더라도 비대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고영조 시인은 김춘수의 만촌동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70년대에….

경북대학교 교수시절 김춘수 시인에게 배운 시인은 진주의 강동주(작고) 시인이 있고 양왕용 시인(부산대 명예교수)이 있다. 남해 출신 양왕용은 진주고교를 다닐 때 이경순 시인댁에서 하숙을 했고 대학에 가서는 김춘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여전히 비대면이었다.

전화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시집 ‘길 모퉁이 카페’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고 시인은 시집 머리에 간략한 이력을 적었다. “1946년 창원시 귀현리에서 태어나 1972년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동서문학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 창원시문화상, 1996년 편운문학상, 경남도문화상, 2017년 경남올해의작가상, 경남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경남오페라 단장, 경상남도문인협회장, 경남문화예술진흥원장 등을 역임했다.” 약력 곁에 조병화 시인의 케리커쳐가 연하게 그려져 있어서 선이 희미하게 점점 사라질 듯한 것인데도 인상은 강하게 붙들어 준다.

고영조 시인은 성질이 강하기도 하지만 낭만파 답게 부드럽기도 하다. 그가 경남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을 때 통상 경남 중부지방에서 뽑은 경남문학관장을 처음으로 서부지방 시인 박노정을 지명했다. 파격이기도 하고 인물을 찾아내는 안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스스로도 경남문예진흥원장이나 성산아트홀 관장을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여느 시인의 나약으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 아닌가 한다. ‘시인의 말’은 그의 작품인 소품시 ‘릴케’로 대치하고 있다.

“쓰지/ 않으면/ 죽겠는가?// 시를 쓰면/살겠는가?” 릴케의 말을 패러디 하고 있어 보인다. 시를 두고 살겠는가, 아니면 죽겠는가 하고 스스로를 닦달한다. 시인은 시가 없이는 아예 못살겠다는 표명이다. 그는 매일 매순간 못살 것 같은 때가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필자는 시집 뒤에 편집된 시인의 자작시 해설인 ‘시와 변명’을 먼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설의 첫 제목은 ‘내 시의 미니멀리즘’이다. 최대로 꾸밈과 표현을 제거하여 예술형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시에 대한 정의는 많다. 난 그 정의를 다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정의를 핑계로 온갖 답습과 강요도 진부하다. 그래서 선 뜻 시가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시를 다 아는 것 같아도 막상 말하려면 할 말이 없다. 이것 또한 변명이다.”

고 시인은 너절한 표현이나 변명이나 설명이나 답습은 진부하다는 것이다. 아주 말끔한, 단단한 짧은 한 마디가 소중하다. 신사와 같은 차림이거나 태도이다. 단순한 옷이면서 미끈하고 줄이 서고 잘 다려진 바지다. 옷소매다. 그러면서 고 시인은 “단순해지기로 했다. 짧게 최소한의 이미지만 쓰자”라고 한다. 필자는 앞으로 얼른 돌아가서 ‘꽃잎’이라는 시를 읽는다.

“벚꽃잎/ 맑은 시냇물에/ 하얗게 떠간다/ 너를 보내 보는/ 저 꽃잎/오늘 문득 붉다” 벚꽃잎이 시내에 떠내려간다 ‘너’를 보내고 난 뒤 흐르는 저 꽃잎, 문득 붉은 것이다. 마음이 뜨거워졌나? 붉다는 것이다. 시에서 시인은 이 정도의 할 말만 가지고 쓰고 있다. 그속에 더 깊은 말은 저녁 내내 늘여낼 수 있다. 이렇게 말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 신사다. 신사숙녀 여러분! 문득 신사가 되고 싶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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