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나이를 넘고 신분을 넘어
[경일춘추]나이를 넘고 신분을 넘어
  • 경남일보
  • 승인 2021.07.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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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재 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연암 박지원은 노론 양반 출신이며 뛰어난 문장가지만 청빈한 삶을 스스로 택했으며 권력을 거부했다. 어느 여름 장맛비가 열흘이나 계속되어 굶다가 도저히 힘들어 제자 박제가에게 ‘공자가 진채에서 일주일간 굶고 겪은 일보다 힘들다!’며 편지와 빈 술병을 보낸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하고 술병도 가득 채워주길 원한다며 서신을 보낸다.

박제가도 30살 때 정조의 서얼우대 정책으로 규장각 검서관 계약직으로 취직해 녹봉이 변변찮았다. 별로 넉넉치 못한 형편이었지만 “장맛비로 문안 못드려 죄송합니다” 하며 “엽전 200잎을 보내나 세상에 ‘양주의 학’은 없습니다” 하며 답신을 보낸다. 양주의 학(鶴)고사(古事)는 이렇다. 네 사람이 각자 소원을 하느님께 빈다. 한 사람은 억만금 부자를 원하고, 한 사람은 양주 자사를, 한 사람은 학이 되어 하늘을 날고 싶고, 마지막 사람은 억만금을 허리에 두르고 학을 타고 날아가 양주자사로 부임하고 싶다고 한다.

즉 한꺼번에 복을 다 누리고 싶다는 고사다. 빈 속에 술을 보내면 속버릴까 싶어 안주며 고사를 핑계로 정중히 거절한다.

연암 박지원의 수제자 이덕무는 “뛰어난 사람은 가난도 편안하게 여기나 못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이 여기고 짓눌린다”며 가난을 당연하게 여긴다. ‘도고익안(道高益安)’이라 도는 높을수록 편안하다는 이야기다.

이덕무는 박제가 보다 9살 연상이지만 죽고 못사는 사이 즉 ‘지음(知音)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곧 잘 밤새 수다를 떨곤했다. 하루는 이덕무가 네 살 아래인 이서구에게 “박제가 좀 나무라주라” 한다. 다른 사람은 단것 있으면 나 주는데 박제가는 혼자 먹고 심지어 나에게 전해 주라고 한 것까지 먹는다며 고자질한다.

박제가의 나이 53살 때 이덕무가 폐렴으로 사망하자 광주 낙생의 이덕무 무덤에서 ‘아내 잃고 벼슬 잃고 내 몸만 남아 국화 꽃 앙상한데 흰 머리만 남았구나! 가을 겨울 즈음이면 예전부터 마음 상해 청산에 홀로 올라 옛 벗에게 술 따른다’며 친구 잃은 슬픔을 토했다. 지기(知己)도 벼슬도 잃고 아내와 사별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무리 마음 통하는 사이는 언어가 별 의미 없다지만 이덕무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추모글도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나이를 넘고 신분을 넘어 나눈 우정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메마른 우리들 삶에 단비로 내린다. 영원한 이별이 와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면 그 사랑의 깊이 그 만큼 아픔도 적으리라.. 서로를 알아주는 참된 지기 하나 있다면 천하를 얻은 것과 같다.

박상재 청렴 및 학부모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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