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57] 구름 탓이에요 (박완호)
[강재남의 포엠산책 57] 구름 탓이에요 (박완호)
  • 경남일보
  • 승인 2021.07.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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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 줄 알았더니 양떼라는군요. 머리가 잘려나간 것 같더니 가면을 바꿔 쓰는 중이라네요. 기린에서 사자로, 물고기였다가 고양이였다가, 툭하면 낯이 바뀌는 구름들.

늑대다, 라고 외친 양치기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거짓말은 애초 구름의 몫이니까요. 몰라, 아니야, 기억이 안 나. 어떤 기억은 헹굴수록 더 흐릿해져요. 구름의 수사는 언제나 도돌이표에 매달려 있고요.

빈 그네가 흔들거리는 파란 기와집이었어요. 바닥에 흐트러진 알약들이 기와色처럼 번들거렸어요. 담장 바깥에 켜놓은 촛불이 환해질수록 집 안은 더 어두워졌어요. 어둠 속에는 눈과 귀를 틀어막은 개들이 그림자처럼 엎드려 있었고요. 참 파란, 만장한 뜬구름들이었어요.

구름 한 점 없는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채널을 돌릴 때마다 목격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닙니다. 모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앞말과 뒷말이 섞이고 혼동되고 얼굴색이 바뀌고. 모든 것이 구름 탓이었네요. 늑대에서 양떼로 기린에서 사자로, 물고기, 고양이,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수시로 모습을 바꾸니 양치기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요. 어쩌면 양치기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동화는 동화로 남아 제 기능을 다해야 옳은 걸까요. 의문은 이미 동화를 다른 형상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성 높은 곳에 촛불이 거셉니다. 어두운 곳에서 더 환해지는 촛불의 습성을 모르는 척, 외면하지 말자고요. 눈과 귀를 틀어막고 수시로 변하는 동물의 모습이 되지 말자고요 우리. 문득 올려본 오늘의 하늘은 참으로 파란입니다. 만장한 뜬구름 없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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