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시골 여름살이
[경일춘추]시골 여름살이
  • 경남일보
  • 승인 2021.07.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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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 (콩살림지기)
 


요즘같이 햇살이 좋은 때는 우리 집 장독에 장이 맛있게 익어가기 좋은 날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장맛이 든다. 이런 햇살에는 빨래하기도 좋은 날이다. 습기찬 이불을 널기도 좋은 날이다. 시골 여름은 다른 계절과 달리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놓는 생활이다. 푸른 산과 맑은 하늘 대나무 숲과 쑥쑥 크는 밭작물들 그리고 푸르게 일렁이는 논에 모를 보노라면 산 청청 들 청청 온 천지가 초록이다.

부엌으로 난 창은 동네 어르신들과 소통의 창구다. 처음엔 어색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창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추동 아주머니인지 모들 아주머니가 다녀가시는지 알 수 있고 어르신들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지나가다가 딸애 이름을 부르며 무시로 채소들을 한 움큼씩 나눠 주신다, 어르신이 나를 부를 때는 늘 딸애 이름으로 부르시는데, 할머니가 손녀 딸 이름을 부르듯 정겹게 불러주시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채소 받는 것보다 더 좋다. 이렇게 시골 여름살이는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공간을 넘나드는 계절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내 여름살이가 달라졌다.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살게 되었다. 남편이 에어컨을 사온 것이다. 전자제품 중에 가장 꺼려했던 물건이다. 우리가 편리함을 위해 추구하고 사용해온 것들이 지구가 몸살을 앓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치 에어컨이 지구환경 파괴의 주범인 것처럼 꺼려했다.

아마 나는 문을 죄다 열고 더위를 핑계로 이웃과 소통하며 더위를 이겨보려는 심산으로 시골 여름살이를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환경을 보호한다는 생색내기용 마음임을 알았다. 우리 집은 낮에 받은 열이 밤이 11시 되도록 식을 줄을 모른다. 이렇게 밤낮 찜통같이 후끈거리는 집에 에어컨을 놓았으니 얼마나 좋았으랴. 꺼려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문명에 금방 적응한 줄 알았는데 달라진 환경만큼 내 몸도 따라가야 하는데 어색하고 부실하기만 하다. 에어컨을 틀 때마다 문이 닫혀 있는지 확인한다. 열린 공간에서의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부분은 줄어들었으나 닫힌 공간이 답답해졌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길어졌으나 자연소리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듣는다. 무엇보다도 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의 생활이 힘들다. 아직은 달라진 환경에 대한 고민스러움과 부적응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열어 놓은 창안으로 밤바람이 데려온 환한 달빛과 동행한 서녘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며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시골에서의 여름에 흠뻑 젖어 살고 있다.

박종숙 (콩살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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