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경자유전 대신 농지농용을 고민해 보자
[경일시론]경자유전 대신 농지농용을 고민해 보자
  • 경남일보
  • 승인 2021.09.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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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과 이준석 대표 부친의 공통점은 생명력을 잃은 거나 다름없는 ‘경자유전의 덫’에 걸렸다는 점이다. 하위법령에 의해 형해화 된 헌법 제121조 1항(경자유전)이 그 기능을 상실한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잘 나가던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동처럼 죽은 듯 고요하던 것이 때가 되면 우레처럼 소리치는 ‘뇌룡’이라도 되는 걸까. 아닌 게 아니라 ‘경자유전’은 우리나라 농지를 지켜낸 최후의 보루처럼 버티고 있다. 없는 듯 했지만 문제가 터지면 문제가 되도록 한 장치 덕분이다. 나랏일에 정신없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주말 텃밭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경자’ 때문이다. 안 그러면 한 뼘의 농지도 살 수 없어서 그렇다.

문제는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 농지의 절반 이상이 비농업인들 수중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15년 후에는 전체 농지의 84%를 비농업인이 소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예외 조문 덕분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있으되 실체는 미미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신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 망신주기에는 최고다. 사문화된 지 오래지만 법령에 배치되는 엄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해서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표현까지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자명하다. 외형적으로는 법률과 제도가 허용하기 때문이고, 실질적으로는 농지가격 상승에 따른 가공할만한 자산소득 창출이다. 농지가격 상승의 동인은 농지전용에 있다. 농지를 전용하면 농업소득 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인데, 누군들 돈 끌어다 농지를 사지 않겠는가. 그래서 LH직원 투기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곳곳에 투기꾼들이 설쳐대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20년 전국의 경지면적은 156만㏊ 2005년 182만㏊ 던 것이 26만㏊나 줄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 53배가 넘는 농지가 각종 개발 사업으로 전용되어 사라지고 있다. 농가인구도 지난 해 231만 명으로 2005년 343만 명 보다 100만 명 넘게 급감했다. 여기에다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갈수록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8월 17일 농지 관련 법률이 개정되어 농업진흥지역 농지를 주말·체험영농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게 하는 등 농지 취득을 까다롭게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책이 못 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 시점에서 법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경자유전 원칙을 이제는 ‘농지농용(農地農用)’ 원칙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농지를 소유자격 제한으로 규제하는 대신 농지를 농지 외의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게 하고 농업용으로만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농지를 소유 자격 중심에서 농지전용 규제 중심으로 무게의 추를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완전한 농지전용 금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우량농지만이라도 전용을 금지하고, 농지를 유지하는 농업인에 대해서는 정책적 지원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규모의 영농화와 식량안보, 투기요인 차단 같은 효과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활발한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마침 대선을 앞둔 시점에 새로운 농지정책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시대 식량문제는 그 어떤 문제 보다 중요하다.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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