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 바이오필릭 실현해야
[경일포럼]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 바이오필릭 실현해야
  • 경남일보
  • 승인 2021.10.0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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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경상국립대 교수·시인)
 



‘아흔아홉 칸의 고대광실이건 단 세 칸의 초가건 크고 작고는 아랑곳없이 가격(家格)이 있다’라고 작가 이규태는 말한다. 물론 가격은 집의 품격을 말한다. 집이 크고 으리으리하면 당연히 가격(價格)은 올라가겠지만 그렇다고 꼭 집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집이 집다워야 하고 집이 집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집으로서의 가치, 품격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무말랭이 같다면 그건 집으로서의 가치도 의미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뒤란을 두고 그곳에 온갖 잡동사니를 두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뒤란은 궁상스러운 것들이니 남에게 보이기 싫은 물건들이 들어앉는 자리에 불과했지,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집안의 정돈 상태나 품격을 보고 싶다면 꼭 그 집의 뒤란을 둘러보아야 했던 것도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 왔다. 뒤란이 깨끗하고 화초로 잘 정돈되어 있으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었고, 뒤란에 잡동사니들만 있으면 물론 그 집안사람들의 품격을 그만큼 낮게 보아왔다. 그런 뒤란은 결국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고 드러내기 싫은 집의 한구석으로 치부됐다. 그래서 똥구멍 같은 굴뚝도 뒤란으로 나 있고 뒷간도 뒤란의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 뒤란과 같은 사각지대인 곳들은 일반 주택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다. 옥상도 그런 곳이고, 구석도 그렇다.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삼성전자 등 세계적 대(大)회사들의 미국 본사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야외 테라스, 옥상 텃밭, 공기 정화 식물 등 자연 요소를 업무 공간에 연결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이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생명을 사랑하는 디자인이라는 뜻인데, 애플은 본사 애플파크에 나무 8000 그루를 심었고, 구글 사옥도 공원처럼 꾸몄다. 드문드문 떨어진 건물들을 잠실 야구장의 3배가 넘는 40에이커(16만㎡) 규모의 녹지가 둘러싸도록 했다. 아마존은 본사 건물 스피어스(Spheres)를 ‘도심 속 열대우림’이라는 주제로 꾸며, 식물 400여 종 4만 점을 심었다. MS는 사옥에 숲속 통나무집 회의실을 배치했다. 삼성전자는 캘리포니아의 연구 개발 본부에 세 층마다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정원층’을 만들었다. 바이오필리아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이는 자연 속에서 일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교감하기를 원하며, 자연 속에 있으면 심리적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집중력도 향상된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진이 바이오필릭 환경에서 근무한 7600명을 설문 조사해보니 15%는 삶의 질(well-being)이 좋아졌고, 6%는 생산성이 높아졌으며, 15%는 창의력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을 사무실로 다시 불러들이려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도입하기도 한다. 실내공기가 청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업무 환경을 자연과 비슷하게 탈바꿈하는 기업이 늘면서 건물주들이 되도록 모든 실외 공간을 테라스로 고치고 있다고 한다.

잘 관찰해보면 건물마다 하나같이 옥상이라고는 있지만, 옛집 뒤란처럼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다. 보일러 망가진 찌꺼기들 하며, TV 안테나며, 청소 도구에 빈 병, 쓰레기통, 죽은 나무들이 널린 화분들 하며, 속곳 말리는 빨랫줄 하며 거기다 속곳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으면.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 큰 빌딩이고 또 그런 큰 빌딩들은 대다수가 호텔이고 보면. 이따금 호텔 높은 층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면 보이는 풍경이다. 이런 곳을 옥상 정원으로 탈바꿈하는 곳들이 늘고 있고, 그것이 바이오필릭이다. 그런 곳들이 우리 집, 건물, 직장에 구석구석 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코로나19와 ‘위드(With)’하는 시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럴 때 뒤안, 구석에 자연을 상징하는 식물을 들여보자. 그러면 코로나와 위드하면서도 불안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자연이 내 곁에 있으니 건강할 거라는 생각과 마음의 평안과 안식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필릭 효과를 누려보자.

박재현 (경상국립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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