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경상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여기서는 무슨 치료해요?” 안경 밑의 커다란 눈을 굴리며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소년이 걸어 들어왔다. 15년도 더 지난 일, 처음 ○○를 진료실에서 만난 날의 기억이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는 그날부터 병원에 입원해 2년 넘게 항진균제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의사가 아닌 조카-이모 사이처럼 지내게 됐다. 사실, 아이에게 완치를 바라는 건 기적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건 가끔 혈액검사를 해 약물 부작용은 없는지 정도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생후 2개월부터 반복적인 세균 감염에 의해 빈번한 항생제 치료를 받다가 진균 감염(면역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감염 질환)이 생기면서 반복적인 항진균제 주사제 치료가 필요했다. 항암치료나 장기적인 주사 치료를 하는 환자들에게 혈관주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자기 가슴 피부밑에 심은 케모포트 기구를 보면서 불안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모님은 통영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고 간간이 나와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아이 생각이 날까봐 지금은 그냥 언니라고 부른다. 내 핸드폰에는 아직도 ‘○○이 엄마’라고 저장돼 있다.
가끔 통영에서 진주에 올 때면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갓 잡아 올린 거라며 맛있는 가리비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선천성 면역 결핍 질환 환아들 관련 일을 묻기도 하시는데 이와 비슷한 질환을 앓는 아이들의 치료법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하셨다. 아주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자신들과 같은 아픔을 다른 분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의사인 나에게도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환자를 진료하는 오늘의 힘으로 보태어진다. 모든 보호자와 의사의 관계가 다 좋을 순 없을지라도 부디, 나 외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관계들이 병원에서도 가을의 풍성한 수확처럼 아름답게 영글어가면 좋겠다.
서지현 경상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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