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핑계
[경일춘추]핑계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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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희 수필가·진주문협회원
 


요즘 주위에서 나를 제법 편하게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듯하다. 오십 초반에 남매가 제 살길 찾아서 독립을 했다는 이유다. 이십엔 미모, 삼십엔 능력, 사십엔 권력, 오십엔 자식, 육십엔 재력이 경쟁이라는데 늘 고만고만하다가 자식이 내 체면을 세워 준 셈이다.

나는 늦가을이면서 초겨울에 태어났다. 그래서 나의 시작은 겨울이다. 초년인 겨울은 사색적이고 음울했고 여리고 아팠다. 봄 같은 청년시절은 더욱 아팠고 더욱 고뇌했고 때론 찬란했다. 여름 같은 장년시절엔 치열했고 또 치열했다. 이제 중년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가을 하루하루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마냥 아쉽다. 노년은 여분의 생이므로 사계절에 들어있지 않다. 사계를 버무려 나누어주고 못다 한 일들을 갈무리하는 인생 서비스 기간이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늘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인생은 누구나 비슷하다. 누구는 그때 겪었으니 지금 편한 것이고 너는 지금 겪고 있으니 좀 지나면 편해질 것이다. 기쁜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아픈 일이 생겨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면서 살자. 그게 너 잘 살고 나 잘 사는 비결이다.

육십이 넘어 문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요즘 자주 본다. 젊은 사람은 세상을 재단하는데 나이든 사람은 자신을 재단하는 듯하다. 지는 꽃은 다시 피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는 말처럼 사람도 그렇다. 세상 살면서 불손한 누군가를 만나도 꺾이지 말고 화려하게 지자. 이제 곧 또 시작이다.

태어난 달이 다르듯 사람마다 시작점이 다르므로 나이나 상황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살아갈 날이 많을 때는 어찌 살아내나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살아있을 날이 적다고 걱정들을 하고 산다. 아프지 않으면 바쁘고, 바쁘지 않으면 아픈 여자가 지겹다고 이혼을 요구한 남편과 이혼한 B씨, 열심히 일해서 서울에 번듯한 집 사놓으니 쓰러진 H씨, 언제나 귀촌을 꿈꾸며 술 마시는 A씨.

산달이 된 만삭 여인처럼 핑계가 양수처럼 터지는 계절이다. 코로나란 확실한 핑계거리로 세상은 달라졌고 그만큼 힘들어졌다. 그러나 힘을 내어 살아야한다. 어차피 핑계 때문에 성공한 사람은 가수 김건모 하나 밖에 없다.

민경희 수필가·진주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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