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70)
  • 경남일보
  • 승인 2021.11.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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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개천예술제 70년 기념 창설자 이야기(2)
설창수 시인은 1948년 2월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진주지부장이 되었다. 이 협회는 다솔사와 그 언저리에서 11년을 살다가 서울로 간 김동리 소설가가 맡아 있었다. 6월에는 진주시인협회를 넓힌 영남문학회 대표를 맡았다. 이후 기관지이자 문예지인 ‘영문’을 발간했다. 10월에는 서울에서 민족정신 앙양 전국문화인 총궐기대회에 경남 부산지구 대표단원으로 참석하여 지역문화의 정세보고와 세계 문화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초안하고 낭독했다.

1949년 2월 경남일보 부사장을 겸임하고 부산에서 문총 경남지구 특별지부를 창설하여 지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11월에는 제1회 영남예술제를 창시하고 집행했다. 지금 나열하는 이력에서도 잡히는 것처럼 언제나 대표요 책임자였다. 서울에 가면 서울에서의 존재감이 있었고 부산에 가면 부산에서의 존재감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민족지도자로 자타가 인정을 했다. 시인으로서는 그렇게 앞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대중적인 풍격이 당당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곧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덕목이다. 원래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이었다.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과 판단력이 그것이었다. 특히 언변이 탁월하여 그 앞에서 그의 지론은 그냥 토 달지 않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5·16 이후 참의원(상원의원) 자리를 뺏기고 철저한 야인으로 살 때였다. 정기 보수가 없는 때라 ‘파성 시인 전국 순회 시화전’에서 얻는 이윤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생활의 강을 건너야 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시화전 순례의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한 번은 재일교포 위문 시화전 취지로 일본 시화전을 열기로 하고 파성 설창수는 미리 지방 근교 지자체를 방문했었다. 그때 지자체장실에서 “내가 하는 교포 위문 시화전은 광복을 기해 이루어지는 행사인 만큼 지자체장이 도와주는 것은 민족의식의 발로이고 겨레 동반의 거룩한 정신이 깃들여지는 것이므로 마땅히 애국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합니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때 시군 자자체에서는 애국과 독립의 위대한 뜻으로 십시일반 동참해야 했다.

파성의 ‘신언서판’의 ‘言 ’은 언변이고 웅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광복 이후 지방 곳곳에서 웅변대회가 유행이었다. 8·15 제 몇주년 기념 산청군 웅변대회, 또는 경남도 웅변대회, 또는 농촌진흥원 주최 경남 벼 다수학대회 기념 웅변대회에서 심사 기준은 ‘설창수 웅변론’에 의거했다.

설창수의 격려사나 초청 강연 등은 거의 웅변조였거나 웅변이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설창수 선생 초청 강연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감동을 많이 받았다. 시적 언어를 주로 사용했고 흐름을 중시했다. 과거 지도자들은 언변이 없었고 어눌했고 언어적 감각이 모자랐다. 그런데 설창수 언어의 비밀을 필자는 나름대로 파악했다. 강연이 진행되는 중이라도 주변끼리 “야 너 저 말씀이 이해가 돼?”하고 서로 물었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몰라” “나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것다”하고 수런거렸다. 이를 가만히 필자는 들으면서 그 난해와 증얼거림으로 못알아듣게 하는 것이 전략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시에서 경우에 따라 난해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강연도 기법상 어물 어물 중얼거리는 내면의 소리, 또는 무의식적 뭉개짐의 언어를 씀으로써 오히려 장내의 어수선으로 유도 하고 이어 갑자기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로 책상을 치거나 도발적 속도를 내게 되면 청중의 집중도를 확실히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 기발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 전략을 붙들 수 있는 필자의 수준도 수준급이 아닐까 한다.

연설과 관련한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김춘수 시인이 경북의 K대 대학원 강의 중 니온 이야기이다. 개천예술제 왔다가 식당에서 설창수가 떨어트린 호주머니 수첩을 입수했다는 것이다. 그 수첩을 들여다 보니 개천예술제 개회사 원고 원문에 머리 돌리기 손들어 흔들기 머리 가르마 가르기 같은 특유의 제스쳐를 그림으로 그려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고개를 두 번 치돌리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밑으로 꺾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보면 설창수의 연설 몸동작은 진주검무 춤사위보다 더 세밀한 각본을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철저한 준비가 노련한 언변의 배경이라는 것이니! 놀랍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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