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4]고성 가마랑 옹기박물관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4]고성 가마랑 옹기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11.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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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숨 쉬는 그릇 '옹기'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비손하는 할머니 모양을 만들어 두었다.
 
◇추억여행을 떠난 가마랑 옹기박물관

‘독 짓는 송 영감이 늙고 병까지 얻게 되자 아내는 젊은 조수와 눈이 맞아 7살 어린 아들을 남겨 둔 채 도망친다. 송 영감은 병든 몸으로 부자가 연명하기 위해 조수가 빚어놓은 독을 굽기로 결심한다. 손놀림이 둔해진 송 영감은 신열 때문에 쓰러지곤 하면서도 어린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독 지을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방물장수 할머니가 찾아와서 아들을 다른 집에 보내자고 권유한다. 송 영감은 버럭 화를 내면서 가마에 독을 넣어 불질을 한다. 며칠 불길을 지켜보던 중 마지막 단계에서 독이 튀는 소리가 났다. 자신이 만든 독이 깨어지고 있는 것임을 안 송 영감은 그 자리에서 그만 쓰러진다. 다음날, 사랑하는 아들을 방물장수에게 딸려 보낸 송 영감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독이 있는 가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눕는다.’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의 줄거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라져가는 것을 이어가려는 집념과 좌절이 담긴 내용이면서 옹기를 빚는 노인의 장인 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에는 장독을 비롯해 뚝배기와 국그릇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옹기는 건강과 생태, 힐링을 위해 최적화된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곁에는 우리의 전통 그릇인 옹기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소설 속에 나오는 우리의 전통 그릇인 옹기에 대한 추억을 더듬고 옹기의 우수성을 공부하기 위해 고성군 덕명 상족암 옆에 있는 가마랑 옹기박물관(관장 김동인)을 찾았다.

 
가마랑 옹기 박물관 입구.

◇서민의 생활필수품이었던 옹기

진주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옹기박물관에 도착하자 김동인 관장께서 옹기박물관 입구에 있는 커다란 요트와 함께 필자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박물관 뜰에서 바라보니 고성 앞바다와 상족암, 병풍바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옹기박물관 뜰에는 나무로 만든 소가 옹기를 실은 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과 옹기를 지게에 진 노인의 조형물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뜰 한쪽 모서리엔 정갈하게 정리해 놓은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 가운데 할머니 한 분이 정한수를 떠놓고 바다를 향해 비손을 하는 조형물이 필자를 아련한 추억 속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옹기가 있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조정의 박해를 피해 산간이나 바닷가 오지에 가서 옹기를 구우면서 생계를 이었는데, 그때 그들에게 있어 옹기를 굽는 일은 생업이면서 힘든 현실을 극복케 하는 신앙이었다고 한다. 뜰에 전시된 옹기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박물관에 전시된 옹기들을 만나러 갔다.

옹기박물관 바깥에는 여러 종류의 기와, 시루, 소줏고리, 장군, 소변을 보기 편하게 입구를 일부러 한쪽으로 일그러트린 소변기 등 일상생활에 쓰였을 옹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이 변기였다. 엄청 큰 옹기 위에 어린애가 앉아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모습의 조형물은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옛날의 화장실이 친환경적이어서 대소변을 모두 재활용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실내박물관 입구엔 두 개의 굴뚝이 서 있었다. 비를 가려 주는 추녀 밑에 세우는 굴뚝은 연가를 씌우지 않았고, 추녀가 없는 곳에 설치한 굴뚝은 고깔처럼 생긴 연가를 씌워 놓은 점 또한 우리 조상들의 경험과 지혜가 스며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내로 들어간 필자 일행은 숫자를 헬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옹기들이 전시된 공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된 옹기가 총 2000여 점이나 된다고 했다.

 
변기용 옹기 위에서 볼일 보는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둔 것이 재미있다.
질그릇과 옹기그릇들.

토기가 전시된 공간엔 수많은 생활도구들이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기는 700도에서 만들어지고, 옹기는 1200~1300도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토기에서 진화한 그릇이 옹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토기 전시실을 지나자 엄청난 크기의 옹관이 버티고 선 옹기전시실이 있었다. 어른의 시신을 넣는 옹관 건너 쪽 모서리엔 애물단지로 불리는 어린아이용 옹관도 있었다. 신주단지, 등잔, 발물레, 곡식을 담는 항아리 등 다양한 옹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전시된 옹기 중, 어떤 것은 윤기가 흐르고 어떤 것은 흙빛 그대로인 것이 있었다. 흙으로 빚은 그릇에 잿물(유약)을 입히지 않고 구워 광택이 없는 질그릇과 잿물을 입혀 구워 만든 오지그릇은 광택이 난다고 김 관장이 설명해 주어서 궁금증이 풀렸다. 옹기는 주로 곡식을 비롯하여 발효식품인 간장과 된장 등의 장류와 김치 등을 담아두거나 발효 식품의 저장을 위해 옹기를 사용하였는데, 우리나라가 발효식품이 발달하게 된 바탕이 된 것이 바로 이 옹기 덕분이라고 한다.

 
어른의 시신을 넣는 옹관(오른쪽)과 어린애 시신을 담던 애물단지.


◇살아 숨 쉬는 그릇, 옹기

투박하고 서민적인 분위기지만 이 옹기는 정말 과학적이면서 친환경적인 그릇이다. 무엇보다도 이 옹기는 숨을 쉰다고 한다. 김미옥 울산옹기박물관 관장은 ‘옹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흙에는 수많은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들어 있어 이 모래 알갱이 사이에 미세한 구멍들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숨구멍이다. 옹기에 나 있는 숨구멍은 너무나 작아서 500배의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일 정도이며, 물 분자는 공기분자보다 커서 숨구멍을 통과하지 못한다. 즉 숨구멍으로 공기 분자는 통과할 수 있으나 물 분자는 통과하지 못하므로 비가 와도 비는 들어가지 않으나 공기는 들락거리면서 옹기가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이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된 직물이 바로 고어텍스(Goretex)다’라며 숨 쉬는 옹기를 예찬하고 있다.

변화가 미덕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만은 꼭 보존해야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담긴 김동인 관장의 눈빛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엿볼 수 있었다. 고성 앞바다 반짝이는 윤슬이 초겨울 추위를 다독이고 있는 눈부신 오후가 돌아오는 필자 일행을 환하게 배웅해 주었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옹기를 굽던 가마도 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바라 보이는 바다와 병풍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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