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마음 항아리
[교단에서]마음 항아리
  • 경남일보
  • 승인 2021.1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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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교사)
 



한 교실에서 가족이 되어 지내다가 12월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이 어느 정도 자랐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아직 교우관계나 학습 습관에서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어 선생님의 손길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몇몇 있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면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씩씩한 어린이’라고 불렀다. 학교라는 낯선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보람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인성 지도를 위해 할 일이 많았다. 자신감이 있고 활달하고 거침이 없는 아이들 속엔 말수가 적고 예민하고 약한 아이들이 섞여 있다. 서로를 알아 가고 이해하는 데엔 ‘배려’라는 내적인 힘이 필요하다. “마음엔 항아리가 있어 나쁜 말로 채우면 나쁜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미운 마음을 덜어내고 고운 마음을 채우면 고운 말과 행동이 나온다.”라고 했고 아이들은 고운 마음을 채우기로 다짐한 듯 불협화음을 잘 조절해 나갔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서로에 대한 탐색이 끝나고 이해로 가득 찼다. 우리 반엔 병치레로 또래보다 몸도 지능도 덜 발달한 아이가 있다. 다리 근력이 부족하여 혼자 식판을 들지 못하던 아이가 이젠 스스로 식판을 들 수 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줄넘기도 두 발로 뛰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늘 교사인 내가 돌보듯 지도하였는데 어느 순간 시키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이 다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지도받는 아이도 친구가 해 주니 더 좋은 것 같았다. 한 발을 움찔 뛰어도 손뼉 치며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의 본성을 ‘성선설’로 빗대고 싶었다.

11월이 되자 수업 시간에 다수의 아이가 학습이 뒤처지는지 확인하고 챙겨 주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학습이 먼저 끝난 누군가가 늘 챙겨 보고 돌아가기도 했다. 처음에 이런 모습을 보였을 때 ‘한 번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지금껏 매시간 누군가는 보조 선생님처럼 돕고 또 잘하면 자기 일인 듯 기뻐하고 큰 소리로 “선생님 이렇게 잘했어요!” 하며 칭찬하고 있다. 이제 말을 못 하던 아이가 길지 않은 말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간단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모두 기적 같은 일이다.

허미선 시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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