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경일칼럼]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21.12.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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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 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12장의 달력을 한장씩 찢어내다 보니 어느새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남겨 놓으니 어렸을때 감명깊게 읽었던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를 연상하게 된다.

마지막 잎새는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무명 화가가 소녀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한 화가 마을에 화가 지망생 존시와 수가 있다. 여자 화가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의사는 존시가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는 존시를 위해 간호를 하지만 존시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바라 보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는 아래층에 사는 노(老)화가 베이먼에게 존시의 사정을 이야기 하게 된다. 어느날 존시는 담장에 있는 담쟁이덩굴 잎을 보면서 저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밤새 추위의 심한 비바람이 불면서 담쟁이덩굴 잎은 마지막 한 잎만 남게 되었다. 다음날 밤에도 심한 비바람이 몰아 쳤지만 마지막 남은 한잎이 담장에 있는 것을 보게된 존시는 기력을 되찾게 되었다.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래층에 사는 베이먼이 담장에 붓으로 정밀하게 그린 그림이었다. 즉, 존시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무명 화가 베이먼이 사다리를 타고 밤새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담장에 담쟁이덩굴의 마지막 잎을 정성껏 그려 넣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베이먼은 폐렴에 걸려 이틀만에 죽고 만다. 마지막 잎새가 베이먼이 생전에 그리고 싶어 했던 걸작이 된 것이다. 이렇게 베이먼은 존시를 살렸지만 정작 베이먼 본인은 죽음을 맞게 된다.

나뭇잎 하나도 봄 여름에는 나뭇잎이 파릇파릇하고 촉촉한 잎으로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면서 초록빛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하였고 가을이 되어 오색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고 나무 잎이 한 잎 두 잎이 떨어져 가는 것을 보면 서글퍼지는 것이 우리의 감정일 것이다. 어느덧 나뭇잎도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 뒤로 파란 하늘이 듬성 듬성 커져가고 있을땐 그리움이 아른거리게 된다.

1년 중 12월이 되면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마지막을 좋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은 최후를 의미하기에 더 그렇다. 황량한 가지에 홀로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나뭇잎도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최후까지 버텼을 것이다. 1년 중 12월의 끝자락이 되면 유독 후회를 많이 하게된다. 무언가 의미 있는 한 해였다는 생각보다 우물쭈물하다 한 해를 보낸것 같은 자책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에 후회하면서도 또 연말이 되면 후회하고 만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세월의 속도가 화살같이, 총알같이, 빛과 같이, 눈 깜짝할 새 가속에 가속이 붙어 지나감을 느끼게 된다. 세월은 꼭 같이 가는데 내 마음이 쫓기고 있다. 밤에 잠이 잘 들지 않고 밤에 자주 깨어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할 때가 많아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 마지막 달력이 지게 되면 마치 ‘마지막 잎새가 지면 나의 생명도 다 하리라’는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 존시는 말했지만 결국 마지막 잎새로 존시는 다시 기력을 회복했듯이 우리의 삶이 잘 풀리지 않아도 희망을 가져 보자. 마지막이 주는 의미는 밝음 보다는 어둠에 속해 있는 듯 좀 낯설어 보이지만 처음이 주는 느낌이 설레고 희망적인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끝을 향해 간다는 의미도 담겨 있기에 처음이 곧 끝이 되기에 지금 힘들어도 희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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