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잘 익은 ‘퇴비’는 향기가 난다
[농업이야기] 잘 익은 ‘퇴비’는 향기가 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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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중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노랫말이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의미인데 왠지 ‘익어간다’는 말은 더 완성되어 가는 느낌을 준다.

농업적으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발효’와 ‘부패’이다. 미생물이 번식하며 유기물을 분해하는 화학적 변화는 같지만, 인간에게 유용하면 ‘발효’, 해로우면 ‘부패’로 표현된다. 사실 부패는 인간에게는 해롭지만,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분해하여 생태계 물질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퇴비(堆肥, compost)의 정의를 찾아보면 “짚, 잡초, 낙엽 등을 높게 겹쳐 쌓아 자연 발효시켜 만든 비료로 ‘두엄’이라고도 한다. 잘 부숙된 퇴비의 질소는 속효성이며 비효도 지속적이고 인산은 작물이 이용하기 쉽다. 퇴비는 흙의 보수력과 흡비력을 증가시키고 물리성(physical property)을 좋게 하며 산성화를 저지하는 등 흙의 화학적 개량에 도움이 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잘 부숙된 퇴비’이다. 퇴비가 가지는 모든 장점은 잘 부숙 되었을 때 만 기대할 수 있다. 부숙 유기질비료에는 퇴비, 가축분 퇴비, 부숙겨, 부숙 톱밥, 부엽토, 부숙왕겨, 건조축산폐기물, 가축분뇨발효액이 있다. 이 비료들은 농림축수산업 및 제조·판매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인분뇨 또는 음식물류폐기물을 원료로 하여 부숙 과정을 통해 제조한다.

농경지 토양은 우리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산물, 특히 가축분뇨 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잘 부숙된 형태가 아니면 토양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미부숙 퇴비는 토양 내에서 혐기발효가 되면서 유해 가스 발생해 직접피해와 생육저하, 영양부족 유발, 토양내 산소 고갈 등 간접 피해도 발생한다. 실제로 영농현장에서도 미부숙 퇴비사용으로 농업인의 피해사례가 적지 않다. 왜 이런 미부숙퇴비가 유통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퇴비 재료에 따라 완전부숙 되는데 필요한 발효기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경제 원리에 따라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축산업자는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가축분뇨를 빨리 처리하고, 가축분 퇴비 생산업자는 최대한 빨리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농업인은 비효가 빠른 제품을 사용하여 최대한 크고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익어가는 시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이 토양은 거칠어지고 지치고 늙어간다.

농경지 토양은 이제 식량생산 공간을 넘어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정책적 노력이나 기술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삶과 환경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잘 부숙된 퇴비를 필요한 양만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농경지 토양을 사람과 생물이 공생하는 생태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향기를 품고 익어가는 토양, 잘 익은 퇴비에는 반드시 좋은 흙의 향기가 난다.

안동춘 경상남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농업환경담당·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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