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5]하동 편백자연휴양림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25]하동 편백자연휴양림
  • 경남일보
  • 승인 2021.12.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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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울창창 숲에서 온전한 힐링을

 

◇독림가의 거룩한 마음이 가꾼 편백나무숲

‘대나무 숲’ 하면 담양 죽녹원과 거제 맹종죽테마공원, 그리고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이 떠오르는 것처럼, ‘편백 힐링숲’ 하면 장성 축령산, 완주 공기마을, 통영 미륵산, 남해 편백자연휴양림 등이 떠오른다. 대나무숲이 명상과 사색하기에 좋은 곳이라면 편백나무숲은 건강과 힐링에 좋은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백나무숲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하동 출신 고(故) 김용지 선생께서 무상기부채납한 편백나무숲을 하동군에서 휴양림으로 조성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독림가의 거룩한 마음이 서린 숲을 만나고 힐링도 할 겸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하동 편백자연휴양림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1928년 하동읍에서 태어나 12살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생활하던 김용지 선생께서는 고국을 왕래하던 비행기에서 6.25전쟁으로 인해 벌거숭이로 변한 산야를 보고 가슴 아파하던 중, 1970년 초부터 일본에서 편백나무 묘목을 한 해 1만 주씩 가져와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일대의 헐벗은 산에 조림을 시작해 80만㎡ 면적에 35만 그루를 심어서 가꾸었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 가운데 30만㎡를 하동군에 무상기부채납했고, 하동군은 선생의 참뜻을 기려 국민 누구나 숲을 찾아와 휴양할 수 있도록 하동 편백자연휴양림을 조성해 마침내 2020년 문을 열었다.

진주에서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휴양림 입구엔 방문자 안내소가 있고, 그 옆에 김용지 선생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흉상과 ‘김용지기념관’을 마련해 놓았다. 기념관에는 선생께서 평소 쓰던 유품, 숲 조성 과정과 관련된 신문 기사 자료와 함께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 녹차김, 녹차과자 등 하동의 먹거리도 전시·홍보해 놓고 있었다.

 

 



◇힐링과 충전의 공간, 편백숲길

기념관에서 나와 포장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걸어 올라가자, 작은 연못 옆에 편백숲길 산책코스를 안내해 놓은 알림판이 있었다. 1코스인 ‘상상의 길’은 2.7㎞, 2코스 ‘마음소리길’은 1.5㎞, 3코스 ‘힐링길’은 1.7㎞로 총 5.9km의 편백숲길을 조성해 놓았다. 필자 일행은 1코스인 상상의 길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상상의 길 초입은 조금 가팔랐다. 숨이 약간 찰 정도로 걸어 올라가자, 팔각정 하나가 나타났다.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니 뷰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첩첩산중에 들어온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산과 하늘, 골짜기에 점으로 보이는 집들뿐이었다. 강원도 대관령이나 지리산 벽소령의 별천지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도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보면 저기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왔다. 펼쳐진 풍경과 ‘상상의 길’이란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팔각정에서 2코스인 마음소리길로 접어들자, 경사가 심한 산기슭은 온통 편백나무 세상이었다. 편백나무 외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나무가 길을 터준 숲길을 걸어가자, 상상의 길을 걸으면서 다른 세상에 가 있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와 고요히 명상에 잠길 수 있었다. 편백숲길 길섶엔 탐방객들이 잠시 쉬었다 가도록 편백나무를 잘라 만든 다리에다 굵은 맹종죽 하나를 걸쳐놓은 벤치가 있었다. 담백하면서도 운치 있는 쉼터다. 군데군데 나무와 돌로써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형상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각각 달리 보였다.

환상적 분위기의 편백숲 산책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자, 숲속 탐방객들의 숙소 겸 휴양시설인 ‘숲속의 집’이 나타났다. 그림처럼 예쁜 집이다. 겨울이라 이용객은 거의 없고 집들만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임도를 따라 다시 10여 분을 올라가자 이번엔 두 번째 ‘숲속의 집’이 나타났다. 6채의 집이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양이 퍽 다정하게 보였다. 3코스인 힐링길의 시작 역시 경사가 가팔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힐링길의 꼭짓점에 닿았다. 겨울인데도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땀으로 빠져 나가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힐링길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의 아이디어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길섶에 편백나무로 만든 식탁과 평상,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서 만든 썬베드 모양의 안락의자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의자들이 탐방객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특히 두레상처럼 생긴 큰 너럭바위 하나를 가운데 두고 의자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작은 바위 아홉 개를 빙 둘러 앉혀 놓은 돌식탁이 가장 이채로웠다. 필자 일행은 바위의자에 앉아 과일과 음료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는데 아쉽게도 바위의자는 긴 시간을 허락하질 않았다. 다른 탐방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듯 차가운 냉기로 우리 일행을 내쫓았다.



◇물아일체의 세계를 만나는 숲멍

한때 ‘불멍’, ‘물멍’ 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불이나 물을 바라보면서 세상 시름을 잊거나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곳 편백자연휴양림은 ‘나무멍’이나 ‘숲멍’ 때리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나무 안락의자에 앉아 지그시 실눈을 뜨고 편백나무 숲을 바라보는 ‘숲멍’, 이런 곳에서 마음속에 이는 온갖 잡념들을 다 내려놓고 숲만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분리되는 유체이탈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멍해진다. 편백나무숲을 떠돌다 피톤치드로 정화된 영혼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내가 숲이 되고 숲이 내가 되는 물아일체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온전한 힐링의 순간이다.

편백숲길을 내려오면서 문득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렸다. 황무지를 삼림으로 일궈낸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와 울창한 편백숲을 가꾼 독림가 김용지 선생이 걸어온 길이 지구를 살리고 인간을 살리는 길임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긴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멀구슬문학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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