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 비빔밥은 진주의 역사다
[경일춘추]진주 비빔밥은 진주의 역사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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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이학박사)
 

 

계사년, 그해에도 진주성 능소화는 눈물 같은 꽃잎을 뚝뚝 떨궜으려나. 적군의 사기를 꺾은 진주성 전투는 위대한 혈전이었다. 피난 온 백성들까지 7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된 16세기 동북아 최대의 전쟁이었다.

진주성 비빔밥은 오래 전부터 진주 일대에 내려오는 설화다. 진주성 전투의 상징이기도 하다. 농경시대 소는 큰 자산이었다. 진주성에는 높은 관리들이 살았고 근처 나불천에는 백정들이 모여 살았다. 더는 희망이 없어진 그때, 소를 잡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군관민이 울먹이며 먹었을 전쟁터의 비빔밥은 절망의 허기를 채워준 최후의 만찬이었을 터다.

진주성 비빔밥은 이 산하를 지켜낸 숭고한 생명들의 마지막 이야기다. ‘논개제’에서는 해마다 비빔밥을 나누며 진주 정신을 기린다.

육회비빔밥은 본래 진주 반가의 음식이었다. 반드시 18가지 재료가 들어가야 진주비빔밥이라고 했다. 일곱 가지 보석을 받은 듯 화려해 칠보화반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관기는 천민 계급이라 따로 급여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생들은 양반집 잔치에 불려가 가무를 제공하기도 하고 잡일을 돕거나 관아의 반빗간 일도 겸했다. 진주는 전통적으로 사족의 세력이 강성해 관아와 교류가 잦았다. 진주비빔밥은 자연스럽게 관아의 별식이 됐다. 교방이 폐지되고 기생을 첩실로 삼는 서부경남의 갑부들이 늘어나면서 명맥이 유지됐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비봉산 밑 기와집에는 유유자적 누워 기생첩의 가야금 소리를 듣는, 중절모에 백구두 갑부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진주의 90대 노유분들은 아직도 몇몇 기생들의 이름과 비빔밥을 함께 추억하신다.

진주비빔밥에는 콩나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콩나물은 주로 고인 물을 정화할 용도로 재배한다. 지리산 정상에서 발원한 생수가 흐르는 진주의 비빔밥에 콩나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소고기는 육회로 얹거나 취향에 따라 스테이크처럼 살짝 구워 올려도 좋다.

두터운 지리산의 흙이 키워낸 각종 나물과 속대기가 어우러지고, 다진 참바지락을 참기름에 볶은 잘박한 보탕국을 한 수저 넣는다. 송이버섯을 얹는 것도 특징이다. 송이는 산청현 삼장면의 것을 최고로 쳤다.

밥은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여러 가지 나물을 섞어도 간이 알맞아야 한다. 진주비빔밥은 역사와 문화예술을 총 망라한 교방음식의 상징이다. 2022년 새해에는 진주비빔밥이 옛 명성을 되찾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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