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기적의 볍씨 희농1호 이야기
[농업이야기] 기적의 볍씨 희농1호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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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희농1호’ 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식량이 부족했던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요 국정과제 중 한 가지는 주식인 쌀의 자급이었다. 그러니 당시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까지 나서서 해외 우량 벼 품종을 도입하였다. 그 중 하나가 이집트에서 도입한 ‘나다’ 라는 품종이다. 이집트를 방문한 우리 요원들의 눈에 벼가 튼실하고 이삭이 커서 가져오기만 하면 대박을 터트릴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당시 중정부장 김형욱은 나다의 밀반입을 두고 제2의 문익점이라 공치사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 볍씨에 박대통령 이름의 희(熙)자를 붙여서 ‘희농1호’라는 품종 이름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국내보급에 나섰다. 결론적으로 이 품종은 농가에 보급되었으나 종자생산조차 어려울 정도의 흉작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집트에서 그렇게 풍성한 이삭을 보여주었던 벼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을까? 여기에는 식물의 광주기성이라는 과학이 들어 있다. 벼는 대표적인 단일식물로 밤의 길이가 일정시간 이상 길어지면 개화하는 식물이다. 고위도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낮의 길이가 하지에 14시간 50분으로 가장 길고, 이후 점점 짧아져 추분이 되면 12시간, 동지가 되면 9시간 30분이 된다. 식물도 낮 길이가 짧아짐을 잘 인지해야만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 꽃을 피우고 종자 맺는 작업을 완료해서 후대를 기약할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볍씨를 적도 부근인 저위도 필리핀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 저위도 국가의 낮 길이는 일 년 내내 12시간 정도로 우리나라 가을의 낮 길이다. 그러니 국산 볍씨를 심으면 벼 잎이 몇 장 나오지 않고 충분히 자라지 않았는데도 가을로 인식하고 이른 이삭 패기를 하게 되어 결국 키가 작고 수량도 형편없다. 반면에 희농1호처럼 저위도에서 자라던 볍씨를 국내에 심으면, 가을이 되어 국내 품종들이 누렇게 익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이삭 패기 준비를 한다. 그러니 날이 추워지면 이삭을 패다 말고 말라 죽어 정상적인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벼 품종 육성은 과학의 영역으로 농학자에게 맡겨 두어야 하는데, 희농1호처럼 전문가가 빠진 의사 결정은 많은 문제점을 남길 수 있다. 앞으로도 제발 과학의 영역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오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희농1호는 실패했지만, 우리 농학자의 힘으로 통일벼를 개발하였고 1975년에는 꿈에 그리던 쌀의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위 사례처럼 국가에 맞는 품종이 있듯이, 작게는 우리나라 안에서도 각 지역마다 그 지역에 적합한 품종이 필요하다. 최근 경남농업기술원에서도 우리 도에 적합한 벼 품종을 육성했다. 작년에는 마늘·양파 후작에 적합한 ‘조원’이라는 품종을 만들었고, 올해는 밥맛이 우수하고 쓰러짐에도 강한 ‘아람’이라는 품종을 출원한다. 두 품종 모두 경남의 많은 농업인에게 선택 받아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선사하는 품종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김영광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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