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숲이야기]지게와 밤나무
[박재현의 숲이야기]지게와 밤나무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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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피는 계절...사랑을 지게에 싣고
 
굳이 큰 나무가 필요 없습니다. 커다란 나무의 Y자 모양으로 삐뚜름히 자란 상수리 가지만 있으면 만사형통이지요. 어른 손목만큼 굵은 정도만 되면 좋습니다. 잘생긴 가지는 아니지만 기다랗고 통통한 가지면 됩니다. Y자 모양이지만 못생겼다고 타박할 필요도 없습니다. 낫으로 탁탁한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또 안으로 드러난 하얀 속살을 살짝 벗겨내고 잘 다듬어 끈으로 튼튼하게 엮으면 지게는 금방 만들 수 있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튼튼한 끈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동아줄이 집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굵은 밧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끈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합성수지니 플라스틱이니 고무니 하는 물건들도 흔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지요. 그래서 군대에서 떨어지고 헐어 내버린 소총 멜빵이나 칡덩굴 혹은 헝겊 쪼가리들을 엮어 썼지요. 얼추 틀이 만들어지면 Y자로 벌어진 두 가지 사이에 평평한 판자를 얹기만 해도 훌륭한 지게가 완성되었습니다. 굳이 판자를 얹지 않아도 지게는 그 쓰임새에 있어서나 모양에 있어서나 모난 것이 없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게처럼 유용한 운반 도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등에 착 달라붙는 지게만 있으면 무엇이든 짊어지고 어디로든 다닐 수 있었지요. 산에서 나무를 할 때도, 이삿짐을 옮길 때도, 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나를 때도 지게만 있으면 용달차가 필요 없고 손수레가 필요 없었지요. 그래서 가난한 살림에 지게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어디서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만들기도 쉬워 어느 집이고 지게 한 채는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예닐곱살 때쯤 시골집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를 따라 논에 나가서 놀았습니다. 밖에 나가면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저를 지게에 태우고 다니셨기 때문이지요. 할아버지 지게에만 올라타면 전 하늘을 붕붕 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지게에 올라타면 높은 곳을 볼 수도 있고, 요즘으로 치면 무슨 놀이기구에 올라탄 것 같아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지요. 할아버지 걸음 따라 비틀비틀 건덕건덕 요동치는 지게는 혹여 떨어지지나 않을까 전율도 있고 요람에 탄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제가 무슨 장수나 된 듯 이랴이랴 할아버지 어깨를 두드리며 우릴 따라 달려오는 강아지 더러 마구 달리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지게만 보면 괜히 옛날 생각이 나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손수레도 없어지는 마당에 지게가 있을 테냐는 사람들의 말처럼 요즘은 시골에 가도 눈 씻고 봐도 지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젠 시골집들도 바퀴 달린 당카니 손수레니 경운기니 트럭이니 하는 것들이 사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무거운 짐들을 날라다 주고 있기에 지게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지요. 또 지게를 짊어질 사람도 없습니다. 예전에야 모두 지게 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겼으나 이제 젊다고 하는 축들은 지게를 져 보지도 않았고, 또 지게를 질 줄도 모르지요. 지게를 지는 일은 작업장에서 등짐을 지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굉장히 힘든 일로 알고 또 지저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많은 날 지게로 소여물 만들 사료나 나르고 소똥이나 져 나르고 한 예전의 시골 풍경을 어디선가 엿보았기도 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기계니 모터니 동력을 이용해서 무거운 짐들을 옮기면 일도 쉽고 어려움도 없는데, 굳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힘들게 하느냐 말이지요. 어쩔 수 없이 등짐이나 지게를 져야 한다면 몰라도 그런 구식 물건을 지고 다닐 일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죠. 로켓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시대에 웬 지게? 고리타분하다는 거죠.



 
 


노태웅 시인의 ‘밤나무 한 그루’라는 시를 읽어봅니다. “봄비에 마음 씻고/달빛 아래/밤꽃 피는 계절/밤나무 한 그루/꿈을 긁어모으면/깊어가는 계절만큼/사랑이 쌓인다// …”

그렇죠. 밤나무꽃이 피는 오월은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입니다. 밤꽃 냄새를 맡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들죠. 말하기 어려운 향기라고도 해야 할까요. 슴슴한 향기입니다. 이런 밤나무가 오래되면 베어낼 것을 생각하는 밤 수확 농가들이 있지요. 소작(小作)으로 하는 사람들은 밤이 나이가 들고 열매가 잘 맺히지 않으면 잘라내고 다른 나무를 심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 가지를 잘라, 지게를 만들기도 하지요. 밤나무는 잘라 놓으면 금세 썩기 마련이라 빨리 껍질을 벗겨내고 말리거나 다른 용도로 써야 합니다.

밤은 식량이나 간식으로 금상첨화지요. 밤이 열리면 장대로 후드려도 후두두 후두두 떨어지지만, 바람이 밤을 잘 따기도 하지요. 밤이 익으면 밤송이가 벌어지면서 저들이 알아서 떨어집니다. 급한 마음에 장대로 후들이다가 밤송이가 떨어져 머리에 맞으면 큰일입니다. 밤송이 가시가 촘촘한 게 보통 아픈 게 아니랍니다. 밤송이를 깔 때도 쉽지 않습니다. 코팅된 장갑을 껴보지만 가시가 뚫고 들어와 얼마나 아픈지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유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생각납니다. 릴케가 죽기 1년 전(1925년) 자기 죽음을 알았는지 유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유언장에 자신의 비문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였죠. “장미,/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이라고요. 아마 릴케는 밤나무 가시를 몰랐나 봅니다. 밤나무 가시에 찔리면 더 아프다는 것을요.

왜 밤나무(밤나무속;Castanea Mill. 밤나무(Castanea crenata Sieb. et Zucc.), 약밤나무)라 불렀을까요. 거의 모든 꽃이 여성을 상징하는데, 유일하게 밤나무꽃은 남성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랬던가. 옛날 부녀자들은 밤꽃 필 때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더욱 근신했다고 하는데요. 밤꽃 향기로 설레지 않을까 하는 속설입니다. 밤꽃도 꽃이라 자연의 꽃향기는 인체에 좋겠지요. 꽃향기로 질병을 치료하는 아로마요법(향기 요법)이 인기인데요. 밤꽃 향기 그윽한 숲길을 걷는 것 역시 인체에 유익한 아로마요법이지요. 밤꽃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서 불안감, 우울증 등 감정을 완화해준다고 하지요.

그런 밤나무로 지게를 만들어 놓으면 요긴하게 쓰이죠. 밤이 달리지 않는 가지를 잘라 만들면 되니 마을 가까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였고요. 이런 지게가 좋습니다. 투박하게 생겼지만, 어깨에 탁 둘러메면 등짝이 묵직하니 탄탄한 것 같고요. 그걸 짊어지고 나뭇단을 하면 운동도 할 수 있고요. 또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고 통나무를 잘라다 만든 것은 아니니 자연도 아낄 수 있고요. 언제라도 쉽게 쓸 수 있고, 또 오래도록 쓸 수 있고, 제 생명 다해서는 썩어 땅으로 돌아갈 것이니. 이보다 자연보전사상에 딱 들어맞는 물건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입니다. 거기다 내겐 할아버지의 정까지 듬뿍 담겨있으니 더욱 그렇지요.

일전에 산림유역관리사업*을 위한 평가를 하기 위해 현장에 갔었는데요. 설명하기 위한 보도 판을 지게에 받쳐 놓았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지게였습니다. 산불이 나 베어진 나무로 만들었다더군요. 시골에 가도 지게를 볼 수 없는 요즘 반가운 지게였습니다. 준비한 부서의 재치가 돋보였지요.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의 370년 된 밤나무가 천연기념물 498호로 지정 고시됐다. 사진은 밤나무 전경. 연합뉴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광릉숲에서 나이 350살이나 되는 자생 밤나무가 발견되었습니다. 둘레가 4.56m, 지름이 1.45m, 높이가 14m에 달하는 밤나무인데요. 마을 등지에서 보호되는 것을 제외한 자생 밤나무 중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죠. 우리나라에서 최대, 최고령 밤나무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마을 입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는 370년에 둘레는 6.4m, 높이는 14m에 이릅니다. 광릉숲에서 발견된 나무보다 20년은 더 오래된 나무 입니다. 국립수목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지름 1m 이상 된 큰 나무는 286개체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광릉숲 밤나무는 이 중 15번째로 커요. 낙엽활엽수 215그루 중에서는 12번째고, 참나무과 109그루 중에서는 일곱 번째죠. 아마도 광릉숲이 우리나라 산림생물 다양성의 핵심지역이라서 이런 큰 나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일할 때 광릉숲을 주사리 방귀 치게 다녔거든요. 조용한 숲에서 일하는 기분은 정말 좋았죠. 넓은 숲을 걸으며 한껏 자연을 만끽하고, 홀로의 숲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밤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북아메리카 등 연평균 12도 이상의 북반구 온대 지역에 10여 종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이나 일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밤 생산국이죠. 밤나무는 산성토양을 좋아해서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 딱 맞는 수종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도 밤나무를 조경 식물로 썼다는 기록이 있죠. 조선시대에는 구황작물로 썼던 밤나무를 보호하는데 각별했어요. 꽃이 많이 피어 벌들도 좋아합니다. 밤꿀은 아까시나무꿀처럼 투명하지 않고, 갈색을 띠죠.

율곡(栗谷) 이이의 호에도 밤이 들어가 있죠. 여기엔 전설이 묻어나는데요.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주막의 주모 또는 스님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아들이 크게 될 인물이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해결책이 뒷산에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면 된다고 해서 실제로 심었다고 하죠. 그래서 밤나무 골짜기라는 율곡이란 호를 갖게 된 거죠.

경상국립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 산림유역관리사업 : 산림 당국에서 황폐되고 재해가 나기 쉬운 산림 내 계곡을 자연 친화적으로 정비하는 사업으로, 마을과 가까운 곳의 계곡을 주변으로 숲 가꾸기도 함께 하고, 마을의 휴식처나 산길도 보수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숲을 좋게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산림재해는 태풍이나 집중호우에 의해 산사태가 발생해서 이로 인해 무너진 흙과 돌 더미가 계곡으로 밀려 내려와 토석류(土石流)로 발전하면 하류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이보다 무서운 재해는 없거든요. 예전에 서울 관악산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토석류로 인근 아파트에 피해를 준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지요. 그런 산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실시하는 사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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