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입춘첩
[천왕봉] 입춘첩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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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세월 어찌 머물게 할 수 있으랴/ 세상 일은 다만 슬플 뿐 / 억지로 봄맞이하는 즐거움 지어 보지만/ 거울 속 백발이 도리어 애처롭네’(光陰那得駐 世事只堪悲 强作迎春樂 還憐鏡裏絲;고전번역원 역). 조선중기 문인 신흠의 ‘갑진상원(甲辰上元)’이란 오율 후반부다. 앞서 서거정도 ‘늙으니 봄 더디기를 바라건만 봄은 더디지 않네’라고 읊었다.

▶봄더러 ‘언 땅에 라일락 피우는 가장 잔인한 계절’이라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보통은 생명의 계절이라며 기다리고 반겼다. 그런데 옛 시에서 보듯 노년의 정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걸까. 나이 듦이 싫어서 해본 역설일 터. 대개 칠십을 넘기면서 갖기 시작하는 봄맞이 정서라고 한다. 한데 올봄은 청춘들도 환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일러 코로나 블루!

▶오랑캐 땅에 꽃이 없어 음울한 봄이 예감되는 게 아니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 기승이 꺾이긴커녕 더해 가는 현실이 불안한 거다. 노년이나 젊은이나 모두가 봄 반가운 줄 잊고 올봄도 그냥 지나갈 판이다. 신(神)이건 발원지(發源地)건 그 누군가를 향한 저주도 이제 지쳤다. 그저 하루하루의 안녕만 바랄 뿐이다.

▶입춘을 맞는다. 암울한 마음들이지만 돌아온 계절, 희망 가지고 곧 피어날 봄꽃 기다릴 일이다. 시 한 수 옮겨 마음의 입춘첩으로 삼는다. 아, 저기 꽃이 피었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아, 저기 꽃이 졌구나/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피어 있는 꽃은 힘이 세다/ 살아 있음은 힘이 세다/ 예쁨은 더욱 힘이 세다.(나태주, 예쁨은 힘이 세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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