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6]그단스크 제2차 세계 대전 박물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66]그단스크 제2차 세계 대전 박물관
  • 경남일보
  • 승인 2022.02.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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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비극, 전쟁의 시작과 끝이 있는 곳

 
해질 무렵 그단스크 레흐 바웬사 공항에 첫 발을 딛으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방에서 두툼한 겉옷을 찾는 것 이었다.

폴란드 북부로 여행을 왔다는 설렘은 잠시였고, 발트 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북유럽과 맞먹는 그단스크의 추운 날씨는 초가을이라고하기 무색할 지경이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코로나의 상황을 초록, 노랑, 주황, 빨강색으로 그 정도를 나타내어 각 국가별 위험도를 표시하고 있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 왔을 때 자가 격리를 피할 수 있는 초록 국가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고, 그 몇몇 국가 중 하나에 폴란드가 속해 있었다. 아직까지 수도 바르샤바에 가보지 못한 내가 그단스크를 선뜻 택한 이유는 바다구경이 힘든 동유럽 도시 중 그단스크는 거의 유일무이한 항구도시라는 점 때문이었다.

옷을 단단히 여민 후, 다른 유럽도시보다 한참이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택시를 타고 그단스크 중심에 내렸다. 이미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 차 있는 구 시가지는 그단스크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구경하고 싶은 곳인 듯했다. 옛 시가지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너자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났다. 건축 양식이 꼭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에 늘어선 집들과 비슷했다. 파스텔톤의 건물들은 노을빛을 한껏 머금고 너도나도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이었다. 조금은 낡고 오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동유럽이지만, 그단스크는 그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찾은 것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였다.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카페 밖에 모여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오렌지, 레몬, 생강, 정향이 어우러져 먹음직스런 색을 띠고 있는 폴란드의 겨울 차 헤르바타 지모바(herbata zimowa)를 주문했다. 폴란드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즐겨 마시는 이 전통차는 그단스크의 찬바람과 매우 잘 어울렸다.

이튿날에는 조그마한 카약보트에 몸을 싣고 그단스크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강줄기 위를 떠다니며 현지인 가이드의 소개로 그단스크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 도시에 묻혀있는 크나큰 아픔을 듣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비운의 도시

폴란드는 한반도의 1.4배 면적을 가진 나라로 유럽 중부 발트 해 연안에 위치 한 나라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국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폴란드 최대의 항만 도시 그단스크는 바닷길을 이용하여 유럽국가간 물자 이송을 담당하고 있어서 유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그단스크의 역사에는 많은 아픔이 묻어있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그단스크 앞바다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 전함의 갑작스러운 포격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하 2차 대전)이 시작됐다. 당시 300여명 밖에 되지 않았던 폴란드군은 5배가 넘는 독일군에 맞서 일주일동안이나 저항했지만 끝내 그단스크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단스크 옛 시가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실은 전쟁의 엄청난 피해를 복구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단스크는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프러시아와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단스크가 단치히(Danzig)라고 불리게 된 것이 바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단치히는 1807년 나폴레옹 전쟁기간에 자치권을 되찾으면서 자유로운 단치히가 되었지만 프로이센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피하지 못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며 123년 만에 독립을 찾은 폴란드는 그단스크를 자국영토로 편입시키려 했지만, 그단스크 주민 대다수가 독일계 주민으로 구성되어있던 탓에 자치권만 회복 했을 뿐 도시는 여전히 많은 분쟁에 휘말려 있었다. 독일의 패배는 그단스크에 머물던 독일인의 불만을 야기했고 이것은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면서 그단스크를 가장 먼저 공격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되며 폴란드인들은 무차별적으로 사살 됐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강제 노역을 하는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특히 독일군과 연합군의 격전지가 돼 버린 그단스크는 폭격으로 도시가 전부 파괴 되었고 수년간 복원 작업을 해야 했다.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하게 되면서 나치는 항복을 선언했고 2차 대전은 종전되었지만 그단스크는 소련의 지배를 받게된다. 이 시기의 그단스크는 소련군의 약탈에 또 한번 고통받았다. 하지만 폴란드는 유럽에서 동떨어져 있던 소련의 위성국가 역할을 담당했고, 소련은 그런 폴란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폴란드 유일의 항만 도시였던 그단스크에 조선소가 건설되면서 도시는 오늘날까지도 폴란드의 조선과 해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록한 박물관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축물이 인상적인 제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은 그단스크를 찾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현대 미술품이 전시 되었을 것 같은 외관과는 달리 박물관의 소장품은 전쟁 관련 군사적 자료와 역사적 사료, 탱크와 폭격기 같은 군사 장비다.

전쟁의 기억이 결코 좋은 추억이나 이야깃거리 일리 없는 폴란드에서 2차 대전에 관해 상세히 기록한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게 다가온다. 아픈 역사를 묻어두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박물관이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다음세대, 즉 오늘날의 우리를 위한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시를 한가로이 관람할 수는 없었다. 박물관은 특이한 건물 구조를 반영해 건물의 지하층에 전시실을 마련했다. 전쟁으로 연상되는 어둠과 공포 분위기가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하층에서 더욱 실감 났다.

박물관의 주요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의 순서대로 관람 하는 것이 역사적 흐름 파악에 용이하다. 2차 대전에 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는 있지만 방대한 자료와 설명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려면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첫 번째 전시실의 부제 ‘전쟁으로 가는 길’에서는 당시 소련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전쟁의 종결과 함께 체결된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배상금을 내야 했고, 세계 대공황까지 맞게 된다. 독일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등장한 나치당은 쉽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는 전체주의와 제국주의가 등장하며 전 세계는 평화에서 다시 멀어졌다. 특히 전시는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의 집권으로 나치당의 세력이 커지게 되면서 그와 반대 되는 인종이나 정치 세력들을 전멸 시키려 했던 횡포를 보여준다. 또한 독일의 정치적 상황에 대비하여 유럽의 각 국가들이 취한 태도와 정치 방향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설명 하고 있다. 전시는 전쟁의 발발과정을 상세히 전달하며 무고한 난민들의 학살과 처형, 바르샤바 폭격 등을 시청각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다. ‘전쟁의 공포’라는 부제가 붙은 제 2 전시실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2차 대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사람들도 나치가 세웠던 강제 수용소 만큼은 강한 공포를 느끼고 비상식적인 악랄한 행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만다.

1939년 폴란드 점령과 함께 시작된 나치의 강제 수용소 운영은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이어졌다. 나치당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정치적, 인종적,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정당화 시켰는데, 전시는 그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전시 된 기차는 실제 수용소 운영에 사용했던 것으로, 관람객들로 하여금 ‘내가 저 기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몸을 자유로이 할수도 없는 비좁은 칸에 수십명의 사람들을 싣고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의 질주를 막아설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신경이 반응하는 공포는 빼곡하게 걸려 있는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 앞에서 애잔함과 먹먹함으로 바뀌고 만다. ‘전쟁의 그림자’를 주제로한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2차 대전이 종전 되고 난 후의 모습을 담았다. 나치당의 몰락,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유럽의 자유 등 전쟁의 막바지 상황을 이야기 한다. 2차 대전이 종전되면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 연합의 일부가 되었고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주소: pl. W. Bartoszewskiego 1, 80-862 Gda?sk

운영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25즈워티(한화 약 7500원), 4인 가족권 60즈워티(한화 약 1만8000원)

홈페이지: https://muzeum1939.p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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