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진주인들은 오늘날 진주성, 남강 그리고 촉석루를 방문하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진주성, 남강 그리고 촉석루의 역사적 흔적이 진주인들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현재의 그 주변 경관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감보다는 차라리 적지 않은 슬픔과 아픔이 관통하고 있다. 역사의 크나큰 아픈 현장이기 때문이다.
진주대첩은 제1·2차 전투에서 군관민 약 7만이 전사해 세계 전사 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잘 알다시피 이곳 진주에서는 1593년 계사년 6월에 7만 여명의 민관군이 진홍(眞紅)의 핏빛을 뿌리며 순절했다.
그러나 4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분들을 위한 안식처는 물론 의총(義塚)이 건립돼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 당시는 물론 4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의총이 건립되지 않은 것은 후손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진주인 상당수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오늘날 다른 지역에서는 의총이 건립된 지 이미 오래됐고 현재까지도 엄청난 국가재정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데, 가장 참혹하게 그것도 가장 많은 선열들이 일순간 사라진 이곳 진주의 후손들만이 의총의 의미는커녕, 그 건립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1592년 4월, 부산 동래에서 수백 명의 군관민이 순절했고, 동년 8월 충청도 금산에서 칠백 여명의 의병이 순절했다. 또 남원에서도 1만여명의 민간인들이 순절했다. 당시 동래, 금산, 남원에서는 지역민들이 즉각 그 많은 시신들을 거두고 안치하고 합장해 참담한 그 원혼들의 명복(冥福)을 빌 수 있도록 의총을 건립했다.
근자에 지역의 문화단체에서 의총건립을 위한 의지와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까운 진주 인근 지역에서도 의총건립에 대한 운동에 동참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진주에서는 의총건립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를테면 1593년 계사순의(癸巳殉義)로 처참하게 스러진 선대 진주인들을 위한 올바른 제단 및 의총건립을 제안한다.
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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