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노후준비의 경제학
[경일시론]노후준비의 경제학
  • 경남일보
  • 승인 2022.03.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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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교수)
소치는 목동이 송아지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근처를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송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낙심 끝에 목동은 제우스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도둑을 잡게 해 주시면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바치겠노라고. 기도를 마치고 얼마 후 목동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사나운 사자가 잃어버린 송아지를 물어뜯다가 이제는 자기를 노려 보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목동은 단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었다. 목동은 다시 무릎을 꿇고 제우스신을 찾았다. “오 위대하신 제우스신이여! 저는 도둑을 찾게 해 주시면 송아지를 바치겠노라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도둑의 발톱을 피하게만 해 주시면 황소 한 마리를 바치겠나이다.”

이 우화 속의 목동은 잃어버린 송아지를 찾기 위해 신에게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경죄를 저질렀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약속할 당시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잃어버린 송아지를 찾기는커녕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졌다. 목동의 경우처럼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이었던 선택이 시간이 흐르면서 최적이 아닌 상태로 변한 것을 경제학에서는 ‘시간비일관성’이라고 한다.

19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시기였다.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왜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까? 주범은 바로 정책당국이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려고 통화공급을 줄이다가 그 목표가 달성될 즈음에 선거를 앞두고 실업을 줄이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통화 고삐를 풀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경제정책을 단기적 또는 정치적으로 쓰면 ‘시간비일관성’ 문제에 걸려든다.

미국 하버드대의 토드 로저스 교수는 이런 실험을 한적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급여의 2%를 자동이체해 저축하는 것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모두 동의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부터 즉시 저축이 시작된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오직 30%만 참여하기로 했고, 1년 뒤 저축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엔 77%나 동의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저축참여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시간 때문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더 가중치를 두는 인간의 속성이 부른 결과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이자율을 발생시키는 돈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같은 돈이라도 미래에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 실험과 노후준비의 행동상태를 대비해 보자.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사람들은 저축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퇴직 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서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저축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망설이거나 이런 저런 핑계로 저축을 미룬다.

노후 삶의 질은 본인 및 가족의 건강 상태와 더불어 수익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수익을 키우려면 자산이 많거나 재테크를 해야 한다. 저금리 저성장 상황에선 재테크로 자산을 불리는 것이 요원한 일이다. 방법은 있다. 저축기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가 복리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일찍 저축을 시작하고 싶지만 막상 행동에 옮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결심은 흐물흐물해진다. ‘미래의 나’는 지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현재의 나’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기 때문에 노후준비의 효용을 잘 느끼지 못한다. 노후준비를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는 이유다. 지금과 같이 시대가 혼란하고 경제상황이 불확실하면 미래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노후준비를 위해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이기는 길은 단 하나, ‘지금 바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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