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농산물 안전은 어떻게 진화했나
[경제칼럼]농산물 안전은 어떻게 진화했나
  • 경남일보
  • 승인 2022.03.03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릿고개 시절 생산량만 집중...식량 자급 높아지자 품질 부각
2000년대 들어 친환경에 관심...각종 먹거리 안전 제도 도입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밭에서 잘 익은 물외(오이) 하나 먹고 병원에 실려 간 일화가 있다. 70년대 초 여섯 살 정도 때의 일이다. 어르신들은 일명 ‘채독’에 걸렸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채소에 독소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오이에 병원 신세질만한 독이란 게 아예 없거니와 이는 순수하게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물 영양분 공급원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 인분뇨 사용으로 오는 노로바이러스 감염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그 당시 식품 위생이란 개념은 극히 제한된 부유층에서 있을 듯한 말이고 대부분의 국민은 당장 먹는 문제가 우선이고 식품 위생을 논할 겨를 없는 시절이었다.

1971년 통일벼 출현은 배고픈 보릿고개에 종지부를 찍으며 농정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이 때는 다양한 농산물에서 품종 개량뿐만아니라 무기질 화학비료, 농약 공급이 활발히 이루어져 식량자급률이 급격히 향상된 시기다. 다수확 위주의 농업정책은 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맛과 품질’의 시대로 진입=1993년 추곡벼 정부매입검사부터 통일벼는 매입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이 내려지자 통일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민족이 먹어 왔던 자포니카 계열이 아니라 맛이 없었다. 유통이 안 되니 늘어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었다. 90년대는 양보다 품질과 맛의 시대로 진입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농산물 표준규격화사업이다.

표준규격농산물은 농산물을 통일된 기준을 따라 품목별 등급규격과 포장재의 단량별 가로, 세로, 높이 규격을 정하여 관리하는 제도다.

표준규격제도 이전에는 농산물이 보이는 박스 위에는 보기 좋은 상품(上品)을 진열한 반면, 보이지 않는 속 내부에는 결점이 있는 농산물을 넣는 소위 속박이 출하 습관이 근절되지 않고 중량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표준규격제도 시행으로 정부는 일정부분 포장재비와 선별비를 지원해주고 전국 공영도매시장에 농관원 직원들이 점검하는 등 우리 농산물 품질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다음은 품질인증 농산물을 들 수 있다. 특징적인 재배로 품질이 우수한 농가와 그 농산물에 대해 국가가 품질을 보증하던 제도로 훗날 친환경인증제도 탄생의 기반이 되었으며 90년대 말까지 지속된 제도다.

◇2000년대 웰빙시대를 맞은 농산물=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낸다. 품질은 기본이고 좀 더 안전하고 몸에 좋은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농식품에 잔류하는 농약의 위해성에 대해 극도로 경계심을 표하며 비싸더라도 친환경농산물 구입 붐이 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당시 친환경농산물은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귀한 몸값을 자랑했다. 많은 농업인들이 친환경농법에 뛰어 들었으나, 중도에 이탈한 농가가 많았고 나름 친환경농업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가진 농업인들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GAP농산물도 태동했다. 친환경농업은 무투입 재배환경을 중요시 여겼다면 GAP농산물은 농약과 화학자재를 사용하되 적정규모를 준수한 농산물이다. 식품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서 농산물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중금속, 유해생물 등 위해요소를 적절하게 관리해 소비자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데 목적을 두고 2006년부터 시행되었다. 선진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도 자국 기준에 맞는 GAP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GAP는 수출농산물의 검역 시 중요 검토항목이며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농산물 경쟁력 향상 방안은=현재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다. 제아무리 좋은 농식품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시장에 팔수도 없거니와 이를 생산한 농업인에게는 많은 제재가 따른다. 2019년 전면 PLS(농약물질목록관리제도) 또한 소비자들의 높아진 안전·안심 수요를 일부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 농업인들의 의무실천 사항은 무엇일까. 작물은 필연적으로 병해와 해충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에 따른 작물보호제(농약) 사용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다만, 안전사용기준만 지켜 사용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비자도 농약에 대해 지나친 의구심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 농산물 중 잔류농약은 ‘1일 섭취허용량(ADI)과 잔류허용기준(MRLs), 농약안전사용기준(PHI)’ 3종세트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한계 허용기준을 정하여 과학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 전염병이 장기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소비부진으로 인한 가격하락 농산물이 속출하는 등 농업인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농산물안전성 조사 부적합률은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안전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다. 지금은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신토불이(身土不二) 정신을 되새기고 지역농산물 소비 활성화에 다같이 뜻을 모아야 한다.

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의령사무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