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경일시론]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 경남일보
  • 승인 2022.03.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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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 연계전공 교수)
 
서유석(경상국립대 교수)


현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공약 중에 ‘여성가족부’ 폐지가 있다. 대선 이후 저 공약과 당대표의 반여성적 성격에 반발한 여성들의 표가 상대편 후보 쪽으로 결집했다는 분석도 있다. 며칠 전에는 새롭게 당선된 한 국회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에서 당선된 저 국회의원의 발언은 여성의 삶과 일상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여성의 일상에 대해 성찰이 있었다면, ‘여성가족부’의 격상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여성가족부’ 본연의 모습에 대해 먼저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가족의 돌봄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 혈연의 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봄 노동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돌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돌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아래에서 돌봄은 성역할을 정확히 나누어 시행했다. 남성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돌봄을, 여성은 집안 내에서의 돌봄으로 말이다. 실제로 남편을 의미하는 Husband는 husbandry란 말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먹을 것이나 돈 따위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이 가족 내에서 담당하는 돌봄은 세세하게 집안의 경제사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은,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좋지 않은 취급을 받고 있다. 아내 부(婦)자는 계집 녀자에 비추가 합쳐져 만들어졌으니, 아내란 집안을 청소하는 여자쯤 된다는 뜻이다. 전통적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과한 돌봄 노동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음은 물론, 하루 종일 일해도 티는 나지 않는데 조금만 손 놓고 있으면 바로 문제가 발생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한자에까지 들어간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의 식사와 의류를 준비하는 일이 그러하며,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늙은 부모를 살피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돌봄 노동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인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문제는 ‘여성가족부’란 명칭이 남성에게는 경제활동을 통한 돌봄을, 여성에게는 가족 내에서의 돌봄 노동만을 부과하는 전통적 성역할 구분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 역시, 보건복지부의 업무와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을뿐더러, 여성의 가정 내 돌봄 노동을 지원하는 업무처럼 여겨지기 쉽다. 오롯이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에는 그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지금까지 여성가족부가 펼친 정책 가운데 상당수가 일종의 가족 중심주의에 기반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원래 이름은 여성부였다. 양성평등을 넘어 성평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여성가족부’라는 이름은 퇴행에 가까운 결과이다. 그리고 이 퇴행은 과거 민주당 정권이든 현 국민의힘 정권이든 가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보건복지부와의 업무 중복 문제나, 청소년과 영·유아 돌봄을 ‘여성가족부’란 이름으로 묶어내는 일들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누가, 언제, 무엇을 했든,저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은 가족과 관련된 돌봄 노동은 전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 관념을 더 강화할 뿐이다.

여성을 여성 그대로 바라보는 진정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이 가족 내 돌봄 노동을 전담해야 한다는 인식을 제거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가족을 돌보는 것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왜 남편과 아들은 세세한 가족 돌봄에서 은근슬쩍 발을 빼도 사회적으로 용인될까? 이 글을 보고 화내는 남성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남편이자 아들로서 돌봄 노동에 헌신하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진짜 효자, 진짜 아버지라면, 지금까지 잘해 오셨다면, 화날 이유가 없다. 돌봄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가족에 관한 정부 정책을 여성이라는 단어에 붙여서 시행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부는 성평등 가치를 실현시키는 굳건한 위치에 서야 한다. 가족에 대한 제반 업무는 보건복지부의 역량을 강화하여 운용하자. ‘여성가족부’가 온전한 ‘여성부’가 될 때, 가족 돌봄에 대한 사회의 가치 기준도 확연하게 바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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